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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16. 2019

꽃을 꺾어 꿈을 깨다

꽃을 꺾자. 꿈을 깨자.


졸업식 때 받은 꽃들 중 일부가 말라 부서졌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집으로 와서 첫 번째로 한 일은 방바닥에 널브러진 조각들을 치우는 일들이었다. 그저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우리나라의 식물들을 가장 많이 알고, 우리 땅에 존재하는 식물들을 미래세대를 위해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큰 꿈이었다.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꿈의 조각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까지 항상 무엇인가 되려고 노력했다. 많은 직업들이 학생기록부를 스쳐갔다. 장래희망 칸에 최후의 승자는 과학자였다. 식물을 좋아하는 것은 나를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주었다. 이 일은 친구들처럼 돈과 명예를 좇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는 꿈을 가짐으로써 자부심을 느꼈다. 그렇기에 이것이 정해진 길이라고 믿고 싶었다.


주변의 벚나무들도 꽃의 형태, 색, 모여서 나는 정도가 각각 다르다. 관찰을 위해 당시 조금 꺾었다.


다시 돌아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방면에서 영리한 아이였다. 딱히 꽃이 아니었어도 나는 이런 방식으로 꿈을 정했을 것이다. 밖에 보이기에, 나는 속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꿈을 좇는 학생이란 이미지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사회가 좋게 봐줄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의심하며 물었던 것 같다. 정말로 너는 식물들을 좋아하냐고, 아니면 그저 좋아하고 싶은 것이냐고.


밖을 돌아다니기 싫었다. 내가 모르는 나무들과 꽃들과 마주하기 싫었다. 나는 이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객관적으로, 절대 모두 알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알 수 없다는 것이 분했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뉴질랜드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같이 간 친구들이 여행을 다녀도 나는 가지 않았다. 그저 영어공부만을 했다. 이 역시 원어민이 아닌 이상,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은 이상 원하는 실력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국-뉴질랜드 농축수산 훈련연수 비자 당시 친구들과.


분명히 실력은 전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불안감은 심해졌다. 친구들과 TV, 유튜브 동영상속 사람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이미 가진 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나의 하늘은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질투에는 끝이 없었다. 이윽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내가 싫어졌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정말 내가 길 위에 있는 것이라면, 그 끝에 가까워져야만 했다. 또 미워해야 할 필요도 없어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한 발자국 나아갈 때, 꿈은 두 발자국을 나아갔다. 밑 빠진 독처럼 이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 강력한 꿈이라는 이미지는 사람을 변화시킬 힘을 준다. 꿈에 대한 이미지가 선명해질수록 이 힘은 강해진다. 안타깝게도, 이 힘은 태생이 불행하다. 이 힘은 결핍 위에서 태어난다. 이 결핍은 “돼야 될 나”를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면서 나오는 동력이다. 그렇기에, 저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상상 속의 그림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적인 결핍을 기반으로 무엇인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상대적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당긴 활시위로부터 발사된 화살은 멀리 돌아 사수의 등에 꽂힐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과 학교는 나에게 꿈을 가지기 기대했다. 마치 미래의 직업은 수표처럼 성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나는 꿈을 가짐의 함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그렇기에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얕은 꺼림칙함과 슬픔을 외면했다. 할머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빨라지는 걸음만큼 나는 “보다 좋은 특별한 꿈”에 다가가길 서둘렀다. 그것이 함정인지 영영 모르고 말이다. 이 달리기는 이렇게 부모가 된 아이들을 통해 세대에 걸쳐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감기처럼 퍼져 나갔던 것 아닐까.


나보고 좋은 일, 돈 많이 버는 일, 편한 일을 하라고 하시는 나의 부모님에게 그런 말 하지 마시라고 부탁드린다. "그런데”로 반문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다시 말씀드린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욕심이시라. 오히려 당신이 생각하시는 “더 나은” 곳에 내가 있다면 나는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다시 어머니를 설득한다. 무언가 돼야 한다는 생각 없이, 일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를 사랑하며 돈을 벌 수 있다고 어머니를 달래 드린다.


말라서 굳어버린 나머지 꽃들을 봉지에 넣고 잘게 부수었다. 집 앞 화단에 부어 버리는데 바람이 불었다. 흩어지는 먼지들 속에서 이 마지막 문단에 채울 내용을 생각해본다.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아니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일 수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저것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단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꿈과의 이별에 질척거리기만 했던 내가, 그 녀석 없이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됐던 내가 오히려 더 뚜렷하게 웃을 수 있고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한 문장을 비워 두어야겠다. 그리고 그 답을 됨이 아닌 함으로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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