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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16. 2019

레알 어른의 조건

진짜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능을 마친 후, 나는 그토록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고,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아마 이 두 가지를 어른의 조건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부터 다짐한 것이 있었다. “절대 누군가에게 돈을 받으며 가르치는 일을 하지 말 것.”이다. “가르치는 일”은 상대적으로 높은 시급을 받을 수 있었고, 친구들 또한 학원 수업이나 개인 과외를 통해 용돈을 버는 경우도 많았다. 적은 시간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젊을 땐 돈을 쉽게 벌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을 하며 핑계를 댔다. 나는 그 일들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가르침을 받는 쪽”에게 나와 같은 상처들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거짓말과 함께 나의 스무 살을 시작하였다. 26살이 되어서도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자신을 속이며 여전히 아이로 남아있었다.


  

구글 이미지, 짱구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 중


중학교 2학년, 이 아이의 반은 종례시간이 짧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평소보다 조금 길었는데, 그건 급식비를 내지 않은 아이를 호명할 때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급식비를 제때 내지 못한 아이에게는 오묘한 촉이 발달된다. 선생님이 그 이름들을 부르려는 날의 공기를 감지하는 일종의 육감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담임 선생님들의 난처하고 미안한 마음이 공기 중에 뿌려지고, 아이는 그걸 맡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학기가 시작되고 2달 정도 지나면, 그런 분위기 속에서 불리게 될 이름들은 반 아이들에게 익숙해진다. 그 이름들 속에서 빠지면 안심이 된다. 하지만 항상 불리던 이름들 속에서 혼자만 남아 있을 땐 그렇게 외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종례 후, 교무실에서 아이는 얼른 해야 할 말을 한다. “부모님께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하지만 “내지 못함”에 익숙해지는 것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이는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친구들이 다니는 종합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역시나 학원비가 밀렸다. 학원비를 내라고 말하려는 선생님의 냄새 역시 아이는 맡을 수 있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카운터가 있던 2층을 재빠르게 지나가야지 생각을 했었다. 빠르게 나가려는 아이에게 대머리 부원장 선생님이 소리치신다. “빨리 학원비를 내라.” 아이는 그것이 무척 싸늘하게 느껴졌다. 학원에서 배운 내용들은 아이에게 더 이상 얻어가면 안 될 지식이었다. 아이는 빠르게 집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좁은 거실에서 학원비를 내달라며 대자로 뻗고 울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우는 아이의 눈물은 볼을 타고 거실 바닥 위로 뚝뚝 떨어졌다. 눈물은 뾰족하게 가시처럼 변해 아이의 엄마를 찔렀을 것이다. 그 학원은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좋은 시도였다. 어린아이의 연약한 피부도, 여러 거친 표면들을 거치며 금방 굳은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위와 같은 “내지 못하는 상황”들은 내가 “받아내야 되는 상황”들을 피하게 만들었다. 그 아이에게 내지 못함은 잘못이었고, 부끄러움이었고, 아픔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주는 사람들 역시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통해 스스로를 속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아이의 거짓말을 알고 있다. 아이는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임을 말하며,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되었다. 착한 사람이라고 선언함과 동시에 나쁜 사람을 만들어버린 나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위선자가 되었다. 아이는 기억 속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스스로 날개를 잘랐다. 그 모순적인 다짐과 함께 나쁜 아이가 되어버렸다. 가지고 있던 날개를 스스로 자름과 스스로 자름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이나 경제능력과 사회성에 따라 어른의 자격이 부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조건들은 가변적이고 외부의존적이다. 이 조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사람을 어른으로 만들거나 아이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또한, 어른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층이며 가정과 나라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라는 가상적인 개념의 성격은 대다수의 어른의 그것을 보여준다. 나 역시 이 조건 하의 어른으로서 “착한 사람 선언”을 하였다. 이제, 이 다짐과 이와 비슷한 나의 다짐들을 폐기시켜야 할 때가 왔다. 어른의 조건이 객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아이로 남아있을 수 없다. 어른이 되어야 할 때이다. 최소한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레알 어른”이 되기 위해 하는 말과 행동에 스스로 묻는다. 나를 속이고 있는가? 그리고 너를 속이고 있는가? 지금 그 아이는 어디 있는가?



구글 이미지, 짱구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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