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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20. 2019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면서

법구경, 김달진 옮김

*구글 이미지 검색, 소 잃고 외양간

*구글 이미지 검색, 법구경 김달진


삼촌 간병이 끝나고, 저의 몸도 급격히 좋지 않아 졌습니다.

왜 좋지 않아 졌을까 고민해 봤지만, 이미 아픈 걸 제가 머리를 써봤자 제 머리만 더 아파지더군요.


피곤함이 몸이 된 듯, 침상 위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번 경전 학당에서 들었던 "방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방일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하게 놂"


그리고 법구경 방일품(妨逸品)은 방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법구경, 김달진 옮김

"옛날 소를 먹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 소는 버리고 남의 소를 세어 자기의 소유로 생각했다. 그래서 버려둔 자기 소는 혹은 모진 짐승에게 해를 당하고, 혹은 숲 속에 잃어버려 그 수가 날로 줄어들었지만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공연히 남의 웃음거리만 되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많이 들었다 해도 스스로 법을 따르지 않고 함부로 남을 가르치려 한다면, 마치 저 소 먹이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는 줄 알라. 스스로 자기를 바루지 못하고 어떻게 능히 남을 바룰 수 있겠는가."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 까닭인지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까닭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 까닭인지


이제까지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해왔던 어쭙잖은 말들과 행동들이 "방일"이라는 단어와 겹쳐졌습니다.

저는 법구경 속" 소를 먹이는 사람"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방일했던 사람인 것이었지요.

또한, 주변 사람들을 기만한 것이었고, 스스로를 속였던 것이겠지요.



이 단어의 회초리를 맞으면서 "방일"한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법구경, 김달진 옮김

28
방일한 마음을 스스로 금해
방일을 물리친 어진 사람은
이미 지혜의 높은 집에 올라
두려움도 없이, 걱정도 없이
어리석은 사람을 내려다보나니
마치 산 위에서 평지를 바라보듯.
31
방일하지 않음을 삼가 즐기고
방일을 두려워 걱정하는 비구는
마음에 걸려 있는 번뇌의 얽힘을
불꽃처럼 살라 없앤다.

저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도

방일한 저는, 두려움 속에서 항상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걱정들이, 병원에서 봤던 모습들과 얽혔던 것일까요.

아픈 삼촌을 보면서, 또 아픈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속에 있던 작은 씨앗들은 저의 두려움을 먹고 계속 커져갔던 것 같습니다.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잠시 미뤄두자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의 가족이 아프고, 나의 친구들이 아플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그리고 내가 아프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나를 떠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

전문화된 시대에, 친구들처럼 빨리 무엇인가를 배워 놓거나 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들

어떤 공부를 해놔야 할까라는 계산들


답도 없는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슬펐던 것은

그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막아 놓으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의심해야 했던 것들은 "저의 방일"이지

"방일로 일어나게 된 두려움과 걱정과 의심들"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법구경, 김달진 옮김

27
방일하지 말라. 다투지 말라.
탐욕의 즐거움을 길들이지 말라.
고요히 생각하고 방일하지 않으면,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나의 참 생명, 부처님 생명"이란 법회의 구호대로

제가 본래 있어야 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속으로  외치고, 입으로 말하니

"방일"이라는 단어도 회초리가 아닌 법회 4층의 마사지기처럼 마냥 아프지만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속에서 어린 저는 싸우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 거냐

무엇을 공부할 거냐

그래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냐

결혼은 어떻게 할 것이고

가족이 아프다면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이냐

네가 다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모습이 앞서가고

먼저 결과를 상정하고

스스로 원인이 되어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착각으로

어쩌면 마조히스트처럼 쉼 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마조히스트 : 맞으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


21
계(戒)를 감로(甘露)의 길이라 하고
방일을 죽음의 길이라 하나니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고
도(道)를 잃으면 스스로 죽느니라.

그쳐야겠지요.

방일한 물음을 그치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야겠지요.


하지만

그 물음을 그치는 것도

길을 걷는 것도

끝내는 "저"가 아니여야만 방일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래야만

그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방일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이제까지 법회에 와서 들었던 법문들을 그저 한 귀로 듣기만 했구나라는 반성과 함께

이제 어떻게 너의 방일함을 대하겠냐고 묻는

한 어린아이에게 "법공양"을 드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경전학당과, 일요 법회의 법문들을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밥그릇 속 남아 있는 밥풀까지 긁어 모아 다시 이 아이에게 주어야겠다고 답하며 이렇게 글을 이어 온 것 같습니다.



법사님이 이야기해주셨던 진묵 스님의 이야기를 끝으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석가였더니, 지금은 진묵이로구나


닦이고 닦이고 닦여

바르게 볼 수 있기를


"나의 참 생명, 부처님 생명"

 


구글 이미지 검색, 진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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