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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09. 2019

나도 병원에서 죽게 될까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삼촌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했습니다.

쓰러지기 한 이틀 전부터 말이 약간 어눌해지고, 몸 반쪽의 감각이 이상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병원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시던 중에 쓰러져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첫 한 주는 작은엄마가 휴가를 써서 간병을 해주시고

지금 두 번째 주는 제가 간병을 맡기로 하였습니다.


단 한 가지 지킨 것은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 아홉 가지 수칙 중

삼촌은


1. 금연

2. 절주

3. 싱겁게 먹기

4. 운동

5. 적정 체중

6. 스트레스

7. 정기적 검사

8. 고혈압/당뇨병


총 8가지를 어기시고, 마지막 병원 가기만 지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끊겠지만 술은 먹어야겠다는 삼촌이 얄밉기만 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딱히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침에 와서, 삼촌 밥 먹은 것을 치워주거나

짬짬이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것뿐입니다.


병원의 풍경


삼촌은 준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가 아니라 자리를 옮겨야 하지만

 코를 너무 골아서, 그나마 사람이 없는 준중환자실에 계속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삼촌은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는 옆의 간이침대에서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삼촌은 주로 티비를 보는데, 왜 그렇게 티비를 볼까 생각해보다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의 변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많은 움직임이 제한되기에, 침대에서 볼 수 있는 병원은 신기합니다.

움직일 수 있었을 때는, 내 시선에 따라 공간이 변했지만

지금은 이 공간 안으로 시선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창문 밖의 풍경이 바뀝니다.


창문은 하나의 스크린처럼,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에 따라 바뀝니다.

삼촌도 그나마 창문을 열어 놓고 있으니, 바람이 들어오면서 기분전환이 된다고 하십니다.


둘째, 텔레비전의 화면이 바뀝니다.


가장 다양하고, 많은 변화를 볼 수 있는 곳이 티브이인 것 같습니다. 리모컨의 클릭만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니 삼촌의 시선도, 창문과 텔레비전 사이를 왔다 갔다 하십니다. 사실 티브이를 더 많이 보는 것 같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 하나의 창의 역할이 이곳에서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장면들로 생각이 꽉 차서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셋째, 사람들이 바뀝니다.


주기적으로 검사를 위해 병실에 들어오는 간호사분들과 의사분들 그리고 다른 환자들, 그들의 간병인 및 지인들로 인해 이 공간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렇게 변하는 것들을 보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마지막에는 아픈 삼촌 조차도 변하여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원래 아픈 사람이 아니었으니.



나도 이곳에서 죽게 될까요?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게시물이 빼곡한 게시판 앞에서 눈길이 간 포스터가 있었습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해 안내하는 포스터였습니다.


연명의료란, 의학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어려운 사람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한 치료라고 합니다.
그리고 연명의료결정제도란, 회복이 어려운 상태에 자신이 처했을 때,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가만히 그 앞에 서서 골똘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도 병원에서 죽게 될까?


아직은 젊고 건강한 나지만, 결국에는 병원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플 수밖에 없고, 늙을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생각해보니, 나만은 변하지 않겠다는 은연중의 믿음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최소한 내가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은 나는 분명 건강하고 젊으니까 말이죠.


끝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거 하나뿐일까요.


모두가 그랬듯, 앞으로도 그러하듯, 저도 어느 곳에서 생을 마감하겠죠.

그리고 그 장소가 병원이 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연명의료라는 것이 꼭 어떤 병이나 사고가 아니더라도

삶의 끝에선 순간, 병원에 있다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니까요.


장소는 선택할 수 없더라도, 마지막의 그 순간에 대한 결정은 온전히 저의 몫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마음도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아쉬움이 미련이 되어, 도망가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최소한, 최소한은 내가 이제까지의 삶을 살아왔듯이

삶의 일부로서 똑같이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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