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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22. 2019

저도 이 집 나갈 거예요

할아버지와 나 : 첫 번째 이야기

"할아버지 계속 화내시면, 저도 이 집 나갈 거예요."

할아버지의 이유 없는 짜증에 나도 순간을 참지 못하고 말한 것이었다.




일부로 11시가 넘어서 들어간 날이었다. 일찍 들어가면 할아버지와의 설전이 이어질 것만 같은 날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집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화장실과 부엌까지 엄마가 이 집에 있었던 때처럼 깨끗했다.


할아버지 방문을 열고, 인사를 드렸다.

"누가 왔다 갔어요?"


"고모할머니가 와서, 청소를 하고 갔어."


"지금 나가서 쓰레기 좀 버리고 오자. 밖에 쓰레기가 많아."


할아버지의 동생이며, 나에게는 고모할머니가 집에 다녀 가셨다고 하셨다.

고모할머니는 부엌과 화장실 청스를 하시면서, 쓰레기를 큰 식간 봉투에 다 넣어 놓셨다.

할아버지는 야밤에 그 쓰레기를 밖에다 무단 투기하자고 말하시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저번에 낯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려다 걸려서 벌금을 내셨으니, 밤에 몰래 가져다 버리면 된다는 식이셨다.


나는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제가 너무 피곤하니까 내일 아침에 가져다 버릴게요."


이렇게 말해도 소용은 없었다. 지금 가져다 버려야 한다고 우기셨다.

이윽고 나에게 화내시면서 자기가 버리겠다며 나에게 욕지거리를 날리셨다.


나도 반론했다.

"할아버지, 밖에 CCTV 있어서, 이거 버리다 걸리면 벌금 또 물어야 해요. 그래도 가져다 버린다고요? 이거 다 분리수거해야 된다고요. 또 벌금 내실 거예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성냄을 멈추지 않으셨다.

내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할아버지에게는 "내가 당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무시한다는 것"만 보고 계셨으니 말이다.

쓰레기를 들고나가시려는 할아버지를 다시 막고,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시작하였다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화를 내셨다.

"이거 쓰레기봉투 하나에 이 천 원인데, 한 세 내 봉투는 나오겠다. 왜 말을 안 듣냐, 그냥 가져다 버려라."

"그걸 왜 거기다 넣냐, 그건 왜 또 거기다 넣고!"


이윽고, 항상 그렇듯, 다시 엄마 욕을 시작할 때쯤, 나도 참지 못하고 말하였다.

"할아버지 계속 화내시면, 저도 이 집 나갈 거예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말은 하고 난 다음이었다.

할아버지는 잠잠해지셨다.


분리수거를 다 마치고, 쓰레기봉투를 대문 옆에 기대어 놓았다.

할아버지의 걱정과는 다르게, 분리수거를 해 놓고 나니, 일반 쓰레기봉투 하나면 충분했다.

그것을 보시고, 할 말이 없으신지 그저 방으로 들어가셨다.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 방이 되어버린 안방 문을 여시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집에서 나간다는 소리 하지 말아라. 무섭다."


분명히 나가라고 하신 것은 할아버지면서

자신이 죽어서 귀신이 되서라도 가족들을 저주하겠다며 욕을 하셨으면서

그렇게 고모들, 삼촌들, 우리 가족들까지 다 쫓아냈으면서

왜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하시는지,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인지...




그러다 문득, 멀리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의 친구가 있는 서울에 놀러 갈 때였었나

역인가, 버스 터미널 근처의 피자 집에서 피자를 시켜 놓고 기다리던 때였다.

엄마는 잠시 밖으로 나와 형을 두고 밖을 나갔다 온다고 하였다.

피자의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직도 피자집 문을 바라보는 장면만은 기억이 난다.


엄마는 언제쯤 올까...

나를 버리고 엄마는 어디론가 가버린 것은 아닐까.




이 장면이 할아버지의 무섭다는 말과 함께 엉키어 기억으로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내가 할아버지에게 했던 말로써 할아버지가 느낀 두려움과

어렸을 적, 피자집에서 내가 느낀 두려움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할아버지는 5살 때부터 고아가 되셨다고 하는데

할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혼자 놓였던 그 기억으로 인해서

두려움을 오로지 성냄으로 표현하시는 것일까.


설사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할지라도, 그 내가 상황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할아버지의 성냄과 욕들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보통 사람인지라, 아무렇지 않은 척은 할 수 있어도

그렇다고 아무런 일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떠오르기 싫고 기억하기 싫은 그 기억과 감정들을

할아버지 역시 다시 느끼시지 않길 바랄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 역시 이기적인 이유에서이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대함으로써

나조차도 당시의 감정과 기억들과 마주해야 하기에

나는 이제 그런 종류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오늘도 나는 할아버지만이 있는 집에 늦게 들어갈 것이다.

할아버지가 주무시기 한 20분 전쯤 들어가서

조금만 그 말들을, 성냄의 표현을 묵묵히 들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인사를 하고 나갈 것이다.


한 지붕 아래에

한 가족이라지만

우리 둘은 두 사람인 듯하다.


할아버지와 손자라고 보이지만

그저 독거노인 한 명과, 독거청년 한 명만이 있는 듯하다.


너무도 다르지만, 어쩔 수 없이 비슷한

둘이자, 하나인

할아버지와 나.


오늘 밤에, 또 할아버지는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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