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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r 18. 2023

아귀찜

몽실몽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날은 풍경이 조금 달랐다. 나의 시야에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이다. 나를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에 홀린 듯이 다가갔다. 그 개는 건물 주차장 한 구석 문 안쪽에 묶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문 안으로는 통로가 있었고 건물 식당 뒤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동안은 늘 문이 닫혀있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 후로 진돗개 몽실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 건물을 지날 때마다 문 앞에서 잠깐씩 몽실이와 시간을 보냈다. (보통 문이 닫혀 있었는데, 잠겨 있진 않아서 문을 열고 만나곤 했다.) 몽실이는 나의 조잘거림을 따뜻하게 웃으며 묵묵히 들어줬다.

“매번 문 열고 몽실이 만나는 친구가 너 구나~?”

 그날도 몽실이 앞에 앉아 놀고 있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돌아보니 몽실이 주인인 아저씨가 서계셨다. 아저씨는 건물 1층 아귀찜 식당 사장님이셨다. 아저씨는 앞으로 문 열어 놓을 테니 언제든 와서 놀다 가라고 하시며 활짝 웃으셨다. 웃으면 몽실이와 똑같이 생긴 푸근하고 친절한 아저씨. 아귀찜 아저씨의 첫인상이었다. 나는 아귀찜 아저씨와도 친구가 되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면 아저씨는 건물 뒤편으로 나와 몽실이 옆에 앉으셨다. 아저씨는 시시콜콜한 나의 이야기도 늘 귀여워하며 들어주셨고, 궁금해하셨다. 그리고 내가 속상한 일이 있던 날이면 스쿠터를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아주셨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오면 내 속상했던 마음들이 바람에 전부 날아간 기분이 들었다. 안 좋은 감정들이 전부 씻겨 날아가고 상쾌했다.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그저 들어주고, 때로는 묵묵히 위로해 주는 아저씨를 나는 엄청 좋아했다.

 내 입에서 아귀찜 아저씨 이야기가 자주 나오니 엄마아빠는 아저씨도 보고 아귀찜도 먹을 겸 그 식당에 방문하셨다. 둥글넓적한 커다란 접시 위에 산처럼 쌓여 나온 아귀찜은 아저씨의 넉넉한 인심을 대변했다. 양도 양인데 맛까지 있어서 그 후로 우리 가족은 아귀찜집 단골손님이 되었다. 엄마는 아귀찜 겉에 있는 까만 껍질 속 야들야들하고 하얀 살만을 발라 내 숟가락 위에 올려주셨다. 통통한 속살을 간장에도 찍어 먹고, 아삭한 콩나물이랑도 먹다 보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 었다. 맛있기도 했고, 얼른 먹고 몽실이와 놀 생각에 더욱 재빠르게 먹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입도 짧았고, 한 끼니 먹을 때마다 기본 1시간씩 걸려서 꾸역꾸역 먹느라 엄마의 속을 끓였던 때였다. 그런 내가 아귀찜 식당만 가면 금방 한 그릇 뚝딱 먹어버리니 엄마아빠는 자주 그 식당을 찾았고, 결국 우리 가족 모두가 아귀찜 아저씨와 친구가 되었다.   

 아귀찜을 보면 그때의 추억이 생각난다. 산처럼 쌓여 나오는 아귀찜,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의 밥 위에 늘 있던 계란프라이, 몽실이 앞에 앉아 조잘거리는 어린 모습의 나, 그런 나를 따뜻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아귀찜 아저씨, 스쿠터를 타고 달리며 맞았던 바람.. 그리고 겉은 매워도 속은 순한 아귀찜과 같았던 아저씨를 떠올린다. 까맣고 차가운 인상의 얼굴 속 따뜻하고 하얀 마음을 지닌 어른을 겪은 후로 나는 사람의 겉모습과 속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가운 겉모습을 지닌 사람일수록 그 속은 더욱 따듯할 수도 있다고, 사람의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따뜻했던 유년의 추억. 이런 추억들이 있기에 내가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음속 소중한 기억을 꺼내 보니 나는 참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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