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는 치즈피자만 먹었을 때가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무언가 섞여있는 음식들을 전부 싫어했다. 시각적으로 예민했던 것 같다. 비빔밥, 카레, 라면, 볶음밥 등등 음식의 재료들이 뒤섞여있는 모습이 더럽게 느껴졌다. 속에 크림이나 앙금이 들은 빵을 먹지 않았고, 오로지 한 가지 맛만 느낄 수 있는 빵만을 먹었다. 소스도 당연히 부어서 나오면 먹지 않았고, 꼭 따로 찍어 먹었다. 섞여 있는 것들을 무던히도 싫어했다. 초등학교 1학년 수학 경시대회에서 은상을 타왔던 날, 엄마가 크게 기뻐하시며 피자헛에 데려가 콤비네이션 피자를 시켜주셨다. 그날이 내가 처음 피자를 마주한 날인데 첫 느낌이 아주 강렬했다.
‘뭐지? 이 혼란한 음식은..?’
알록달록 여러 색의 재료들이 엉켜있는 피자의 모습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끝에 있는 갈색 테두리만이 편안했다. 빵 끝만 먹는 내 모습에 엄마는 자꾸 엉켜있는 부분을 딱 한 입만 먹어보라고 권유하셨다. 내가 피자를 잘 먹게 된 후에 말씀하시길 처음 피자집에 데려갔을 때, 맛있게 먹을 줄 알았는데 테두리만 먹어서 엄청 난감하셨다고 한다. 결국 나는 끝까지 테두리만을 먹고 나왔고, 그 후로 피자는 나에게 맛없는 음식으로 각인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라이스클럽(지금은 코스트코)으로 장을 보러 엄마를 따라나섰다가 식당가에서 아주 커다란 피자를 먹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한 조각이 엄청 커서 신기했고, 내가 봤던 혼란한 모습이 아닌 하얗기만 한 깔끔한 모습의 피자여서 더욱 관심이 갔다. 엄마에게 저 피자는 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저건 빵 위에 치즈만 올라가 있는 ‘치즈피자’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먹어 본 프라이스클럽의 커다란 치즈 피자는 아주 짭짤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그날부터 모든 나의 시험 후 보상은 무조건 치즈피자가 되었을 정도로. 또 엄마와 둘이 장 보러 가서 치즈피자 한 조각을 나눠먹었던 기억은 맛있기도 했지만 스릴 있기도 했다. 피자를 좋아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밀가루 음식을 잘 안 드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 출근 후, 엄마와 먹는 치즈피자가 은밀했다. 비밀은 아니었지만 엄마도 나도 치즈피자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만의 비밀 아닌 비밀이 바로 치즈피자였다.
어렸을 때 나는 라면은 사리곰탕면, 빵은 카스텔라 혹은 마들렌, 소스는 무조건 따로, 피자는 치즈피자.. 그리고 매운 음식을 못 먹기도 했지만 밥그릇에 묻히고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양념 있는 음식도 잘 안 먹었다. 하얀 밥에 무언가 묻는 것도 엄청 싫어해서 밥을 먼저 입에 넣고 반찬을 따로 먹곤 했다. 한 해 한 해 커가면서는 섞여있는 음식을 먹는 게 조금씩 나아졌는데, 피자가 가장 어려운 단계의 음식 같았다. 왜인지 유독 피자가 어려웠고, 편안한 치즈 피자가 있는데 굳이 혼란한 피자를 먹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치즈피자와의 의리를 지켰다.
그런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아들이 있다. 섞여 있는 음식을 싫어하고, 소스도 꼭 따로 먹으며, 밥 위에 반찬을 얹어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당연히 피자도 치즈피자만을 고집했다. 나도 옛날 나의 엄마처럼 딱 한 입만 먹어봤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아이의 마음을 더욱 잘 알기에 기다려주고 있다. 아이는 얼마나 치즈피자와의 의리를 지킬까?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격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어린 나이였을 때 식성에 반영되었던 것 같다. 여전히 식성이 나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지금도 나는 양념을 썩 좋아하지 않고, 소스도 여전히 따로 찍어 먹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섞여서 내는 음식의 맛도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가지 맛을 내는 치즈피자만을 좋아하던 식성은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던 어린 나를 반영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다 커가면서 ‘함께’라는 의미를 배우고 고구마피자, 옥수수피자, 하와이안피자를 거쳐 결국은 콤비네이션 피자까지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아이도 이런 과정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최근에 까르보네피자를 먹기 시작한 것을 보아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전히 소스, 양념, 크림을 싫어하고 섞인 음식들을 불편해하지만 언젠가 적절한 섞임도 즐겁다는 것을 느끼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코스트코 치즈피자가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