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쓰는 엄마’에 합류한 지 벌써 3개월이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나의 어휘구사능력을 실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쓰면서 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한정적인 글쓰기 실력을 이미 느끼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아등바등 3개월 동안 총 17편의 글을 썼다. 글쓰기 모임에 합류하자마자 멤버들을 따라 공모전에 글도 제출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이 명언을 몸소 실현한 것이다. 함께 릴레이 소설을 쓰며 맡은 사람에 따라 장르가 달라지는 재미도 겪었다. (마지막 주자가 내가 아닌 것이 참 다행이었다.) 또 같은 주제로 글 쓰는 것도 즐거웠는데, 한 가지 주제로 네 편의 다양한 글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생각의 다양성에 놀라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글쓰기 모임을 통해 처음 해보는 특별한 경험들을 겪고 있다.
‘쓰는 엄마’에서 멤버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다. 당장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속마음을 적고 싶지 않아서였다. 매주 나의 속마음을 기록해 증거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마치 지울 수 없는 손자국 도장을 찍는 느낌이라 두려웠다. 그래도 무언가 쓰고자 하는 갈망이 두려운 마음을 앞서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9살 때 갔던 10박 11일짜리 국토환경대장정 캠프를 첫 글로 써내면서 나는 비교적 특별한 경험과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이라 그것들만 하나씩 써내도 쓸거리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점점 써갈수록 처음엔 마음을 어디까지 오픈해야 할지, 어디까지 솔직하게 써야 할지 헷갈렸고 그나마 쓴 마음조차 이성이 덜어내고 있었다. 글쓰기 멤버들은 이런 나의 혼란한 생각을 읽었던 것인지 조금 더 깊은 마음이 들어간 글쓰기를 원했다.
어릴 때,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일기는 나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나만의 비밀문서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가 내 일기장을 몰래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그 순간순간에 들었던 내 마음을 적었을 뿐인데 몰래 봤으면서 아닌 척 내 마음을 떠보고 해결하려 했던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비밀은 나만 알아야 진정한 비밀인 건데 자꾸만 내 비밀을 훔치는 엄마가 미웠다. 그래서 ‘아 기록하면 누군가가 훔쳐볼 수 있겠구나. 기록은 내 마음을 들킬 수 있는 증거구나.’ 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박였다. 그 후로 나는 일기에 경험과 사실 그리고 누구나 봐도 괜찮은 정도의 내 마음과 생각만을 기록했다. 기록은 증거라는 생각 그리고 비밀은 내 마음속에만 있어야 안전하다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타당하고 견고하게 이어졌던 것 같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사교육에 치이며 경쟁하던 시기, 그리고 공대 홍일점이었던 시기와 정말 기록이 증거였던 사회 초년생 시기를 겪으면서.
지금 나의 마음은 뭘까? 분명 어렸을 때 내가 썼던 비밀문서처럼 나의 마음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갑자기 커다란 벽에 막힌 것처럼 글쓰기가 더욱 막막해졌다. 마음을 먹는다고 바로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급할 것 없이 흐름대로 매주 한 편씩 글을 써내다 보면 어느 순간 깊은 마음을 드러내는 글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든 연습이 필요하니까.
글쓰기를 하며 발견한 것이 있다. 바로 검증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말은 흐르기 때문에 의미가 대충 맞게 뱉으면 대체로 잘 흘러간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글은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한 의미를 쓰기 위해서 아는 단어도 다시 한번 검색해 보게 되는 것이다. 갈수록 더욱 잘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서 생각을 오래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순간순간 나의 한계를 깨닫고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또한 연습이고 도약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나에게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준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정리 안 된 채 널브러져 있는 나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분류해 각 주머니 안에 깔끔하게 넣어 놓는다는 기분이 든다. 무엇을 정리할지, 어떻게 분류할지 정하고, 주머니 안에 넣는 과정이 어렵다. 그래서 가끔은 엉뚱하게 분류하기도 하고, 깔끔하게 넣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뿌듯하다. 어렵고 아직은 더디게 나아가고 있지만 지금 나의 이 노력들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안다. 나는 무언가 꾸준하게 하는 것을 신뢰한다. 꾸준하게 하는 과정 속에서 무언가 하나는 반드시 얻는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값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 모임을 계속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이다.
언젠가 깊은 마음이 가득한 글을 쓸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증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