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 때, 아빠의 협회에서 매년 해외여행을 가곤 했었다. 협회 사람들 중 자식이 어려 동행해야 하는 집은 우리를 포함해 딱 두 집뿐이었다. 한 번 나가면 보통 2주인 긴 여행을 하기 때문에 지겹고 심심한 순간도 많았다. 그나마 또래가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이번 여행은 새로운 집이 오고 내 또래가 있는 집은 여행에 불참한다고 했다. 그때 또래 없으면 심심해서 나도 안 가고 싶다고 툴툴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심통이 가득한 채로 억지로 떠난 2주짜리 패키지여행에서 안나 아줌마를 만났다.
“예쁜 공주님이 있었네. 안녕? 나는 안나 아줌마야.”
안나는 아줌마의 세례명이라고 했다. 안나 아줌마라고 불러달라며 아이에게 본인의 이름을 밝히고 인사하는 어른을 처음 겪어서 신기했다. 나는 첫눈에 안나 아줌마가 좋았다. 안나 아줌마는 따뜻하고 밝은 햇살 같은 느낌을 주는 분이셨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미소를 지으며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말투는 늘 차분하고 우아했고, 행동 또한 늘 여유 있고 느긋했다. 안나 아줌마는 아들밖에 없어서 딸이 너무 예쁘다며 여행 내내 나에게 사랑을 듬뿍 주셨고, 나도 마치 아줌마가 엄마인 것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시크하고 독립적인 엄마와 완전히 달랐던 안나 아줌마는 나에게 유독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줌마가 먹여주는 밥을 먹고, 아줌마 옆에 찰싹 붙어 관광하고, 아줌마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고, 아줌마 품 안에 쏙 안겨 뽀뽀하기 일쑤였다. 엄마랑 하고 싶던 모든 것을 안나 아줌마가 받아줬다. 초등학생이 되고나서부터 어리광을 절대 받아주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를 안나 아줌마가 전부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안나 아줌마는 나에게 예쁘단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주셨다. 물론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부족한 표현을 아빠한테 충분히 받고 있었지만 엄마에게 직접 받고 싶은 마음 한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넘치게 채워주는 안나 아줌마를 너무너무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여행에 다녀와서 나는 상사병을 지독하게 앓았다. 아줌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심지어 안나 아줌마를 다음 여행 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볼 수 없다고 했다. 엄마에게 안나 아줌마가 보고 싶으니 만나게 해달라고 얘기하면 협회에서도 나갔고, 잘 모르는 집이라 연락할 방도도 없다며 굳은 표정을 지으셨다. 어린 나는 왜 만날 수 없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고, 엄마가 안나 아줌마와 내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안나 아줌마가 너무 그리워서 창밖을 보며 울다 잠들곤 했다. 안나 아줌마가 채워주던 넘치는 표현이 사라지자 괜히 비교하는 마음이 들며 엄마에게 심술을 부리곤 했다. 내 엄마가 안나 아줌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에 엄마가 속상하고 서운해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한 채.
어느 날, 아빠가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자고 방에 들어오셨다. 아빠는 내가 여행 내내 안나 아줌마만 따르더니 다녀와서도 계속 안나 아줌마만 찾아서 엄마가 많이 속상해한다고 하셨다. 엄마도 안나 아줌마를 보고, 또 아줌마를 너무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느낀 게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내가 안나 아줌마만 보고 있어서 집에 돌아오면 노력해 보려고 했는데, 집에서도 안나 아줌마만 그리워하는 모습에 엄마가 많이 상처받은 것 같다고 하셨다. 아빠는 엄마가 안나 아줌마처럼 표현은 못 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엄마의 표현이 적은 만큼 더 깊은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빠 말씀을 듣고서야 아차 싶으면서 엄마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내 마음만 생각하느라 엄마한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나 때문에 오래 슬퍼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도 너무 속상했고, 다시는 엄마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 몰래 안나 아줌마를 그리워했다. 가끔 엄마가 요즘은 안나 아줌마 생각 안 나냐고 물어보실 때마다 무심한 척, 기억에서 흐려진 척하면서 시큰둥해하곤 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문득문득 안나 아줌마가 생각났다. 그럴 때면 안나 아줌마 소식을 묻고 싶었지만 또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엄마를 배신하는 것 같은 마음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안나 아줌마를 마음속 깊이 묻었다. 너무 꾹꾹 눌러서일까? 성인이 된 후부터는 안나 아줌마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안나 아줌마 이야기를 꺼냈다. 안나 아줌마가 지금 많이 아프신 상황인데, 나를 계속 찾으신다고 했다. 나를 너무 보고 싶어 하셔서 건너 건너 아빠에게 연락을 하셨다고. 엄마는 불안한 얼굴로 내가 가겠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하셨다. 안나 아줌마 이야기를 꺼내며 유독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엄마의 눈을 보면서 나는 표정관리를 했다. 엄마는 내가 안 갔으면 하는 눈치셨고, 나는 엄마에게 다시 또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이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에서 나는 선택을 잘해야 했다. 게다가 그때 나는 결혼을 준비 중이었고 독립을 앞둔 상태라 더욱 엄마 마음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마음을 또 꾹꾹 누르며 엄마아빠 선에서 잘 거절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을 혼자 몰래 울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신 건지, 여태 아줌마도 나를 그리워했던 건지,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묻어 뒀던 마음이 터져 나오며 많이 아팠다.
결혼을 하고 이젠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로 인해 엄마가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더욱 실감한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마지막 선택을 후회한다. 안나 아줌마를 만나러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계속 돌이킨다. 나는 내가 한 선택은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최선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한 선택을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분명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자꾸 후회가 된다.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자꾸 후회가 된다. 안나 아줌마가 내 거절을 듣고 얼마나 속상하셨을지, 나는 그때 어렸으니 아줌마를 다 잊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다 보면 간절하게 시간을 돌리고 싶어 진다.
나는 지금 아무리 꾹꾹 눌러 담고 끊어내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되돌리고 싶은 나의 가장 후회되는 기억 중 하나를 더 이상 눌러 담지 않고 끄집어내어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