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May 12. 2023

자물쇠

나의 새로운 취미


 자물쇠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내가 아는 자물쇠는 자전거 도난 방지용으로 그리고 학교 사물함에 쓰던 열쇠 자물쇠가 유일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예 사용할 일이 없어 나의 관심 밖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생긴 나의 새로운 취미, 방탈출로 인해 나는 자물쇠와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맨 처음 방탈출을 하러 갔을 때, 직원분이 각종 자물쇠들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다양한 자물쇠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다. 방탈출은 말 그대로 제한시간 안에 방에서 탈출하는 놀이인데, 방 안에는 많은 자물쇠들과 장치들이 있다. 문제의 답을 자물쇠에 나열하여 하나씩 풀어나가는 놀이 공간이다. 방탈출에서 사용하는 자물쇠의 종류는 제법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숫자 자물쇠는 보통 숫자 3줄 혹은 4줄로 되어있는데, 빨간 선에 맞춰서 정답을 나열하면 풀린다. 방탈출을 하면 가장 흔하게 자주 만지게 되는 자물쇠이다. 그리고 열쇠 자물쇠는 보통 열쇠가 어딘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관찰력을 요구한다. 관찰력이 부족한 나는 열쇠 자물쇠를 좀 곤란해하는 편이다. 버튼 자물쇠 또한 비슷한데, 주변에 여덟 칸짜리 단서를 열심히 찾아봐야 한다. 2x4 짜리 버튼 자물쇠는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거나 아니면 반대로 해보면 대부분 풀린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어려운 자물쇠인 것 같다.

 그리고 숫자 자물쇠 못지않게 많은 영어 자물쇠가 있다. 마찬가지로 선에 맞춰서 정답을 나열하면 풀린다. 보통 스펠링 4개와 5개짜리가 있다. 예전에는 문제와 상관없이 그 방 흐름이나 스토리에 맞춰서 영어 단어를 추측해 풀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 요즘은 제작자들도 말이 되지 않는 스펠링 조합으로 만드는 추세이다. 약간 다른 버전으로 숫자별로 색깔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자물쇠는 아주 높은 확률로 색깔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또 심화 버전으로 혼합 자물쇠가 있다. 숫자, 영어, 기호가 다 있는 마스터락 다이얼 자물쇠이다. Master라고 쓰여 있는 선에 맞춰서 나열하면 풀리는데, 절대 찍어서 풀 수 없는 자물쇠이다.

 다음은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방향 자물쇠이다.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만을 사용하는 자물쇠인데 정답이 몇 자리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굉장히 까다롭다. 문제도 어렵고 방향 유추가 어렵기 때문에 언제나 여러 번 시도 끝에 풀리는 자물쇠이다. 그래서 방탈출 자물쇠의 끝판왕이라고 불린다. 방향 자물쇠 다음으로 까다로운 것은 금고 자물쇠이다. 이 자물쇠는 횟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추측해서 여러 번 시도해 볼 수가 없다. 횟수 제한에 걸리면 일정 시간 동안 사용이 제한된다. 어느 정도 정답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때, 눌러봐야 하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자물쇠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직 몇 번 못 해본 크립텍스가 있다. 영어 자물쇠와 마찬가지로 스펠링을 나열한 후, 돌려서 가운데를 빼면 그 안에 다음 힌트가 있다. 굉장히 섬세해서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고 한다.  

 방탈출을 하며 나는 자주 자물쇠들을 접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각 자물쇠별 손맛이 있다. 조금 뻑뻑해서 강하게 당겨야 하는 자물쇠도 있고, 정답을 나열하기 위해 순서대로 돌리는 중에 점점 느슨해지는 느낌을 주는 자물쇠(이럴 때면 돌리는 중에 이미 정답을 확신한다.)도 있다. 손맛은 다 다르지만 자물쇠가 덜컹! 하고 열릴 때의 짜릿함은 늘 최고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어렵게 푼 자물쇠일수록 그 쾌감도 비례한다.

 방탈출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방을 탈출하는 놀이이기도 하지만 각 테마 속에 들어가 내가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보기 위해 문제, 즉 자물쇠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여행객이 되었다가, 학생도 되어보고, 동물도 되어보고, 우주 비행사도 되어 보는 등 다양한 인생을 잠깐 맛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인생에는 언제나 굴곡이 있다. 그 굴곡과 자물쇠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은 쉽게 풀리고, 어떤 날은 답답하게 안 풀리기도 한다. 일명 돌려 따기가 가능한 자물쇠를 만났을 때의 즐거움, 정확한 정답을 유추해 신중하게 입력해야 하는 자물쇠를 만났을 때의 긴장감 또한 각 스토리의 굴곡 중 하나인 것만 같다. 어려워도 결말까지 잘 마무리 짓기 위해 끝까지 자물쇠들을 풀어나가며 각 스토리의 주인공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방탈출에 성공하여 결말과 함께 내 손에 풀려나간 자물쇠들을 보면 마치 내가 이 스토리의 굴곡을 잘 헤쳐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 짧았지만 주인공으로서 겪은 인생체험이 성취감으로 가득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이 좋아서 방탈출이 나의 새 취미가 된 것 같다.

 요즘은 손으로 직접 돌려서 푸는 자물쇠 방식보다는 다양하고 재치 있는 생각을 해야만 풀 수 있는 장치 방식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물쇠 방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장치 방은 센서로 이루어져 있어 자물쇠가 필요 없다. 방탈출도 세대교체가 되는 것만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자물쇠가 익숙하고 좋다. 직접 돌리고 누르고 여는 손맛을 잃고 싶지 않다. 아날로그의 힘을 믿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방탈출 테마별 주인공이 되어 열심히 자물쇠를 풀 것이다. 내 인생의 굴곡 또한 다양한 자물쇠들을 떠올리며 잘 풀어나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안나 아줌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