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Oct 06. 2023

책 축제

아이와의 의미 있는 시간


 “엄마 평소랑 똑같은데 왜 그래?”

 요즘 야구에 빠져 툭하면 야구 영상을 보는 날 보며 남편이 걱정의 말을 뱉자 옆에 있던 겸이가 말했다. 내가 평소랑 똑같다는 겸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야구 영상을 보는 엄마의 모습이 ‘평소’라는 단어에 녹아들 정도로 내가 조절을 못 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주던 내가 틈만 나면 다른 걸 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겸이는 혼자 책을 읽다가 한 번씩 “엄마, 책 읽어 줄 수 있어?”라는 조심스러운 부탁을 하곤 했다. 나는 아이가 부탁해야만 마지못해 두 세권 읽어주는 게 다였다. 최근에 엄마가 책을 많이 안 읽어주는 것에 대한 아이의 갈증을 학원 때문에, 숙제해야 하니까 등 다른 이유로 내 욕망을 덮으며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겸이를 데리고 아파트 도서관에 갔다. 화창한 날씨에 모두 주말 나들이를 갔는지 도서관엔 우리 둘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겸이에게 크고 생생하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줄 수 있었다. 겸이에게 한참 책을 읽어주다 보면 갑자기 이제 혼자 읽겠다고 하는 시점이 있다. 나에겐 쉬는 시간이다. 겸이는 이 쪽에서 이 책, 저쪽에서 저 책을 읽으며 도서관 전체를 활용해 혼자만의 독서를 했다. 그렇게 각자의 독서 시간을 가지다가, 겸이가 다시 책을 읽어달라고 오면 읽어주기를 반복했다.  

 내 독서 모임 공통 책이었던 ‘빨간 머리 앤’을 읽어주고 모임 공통 질문을 똑같이 던져보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에 사랑이 샘솟았다. 겸이의 특별한 대답들은 늘 나를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성장한 겸이가 기특했다. 또 우리 둘 다 엄청 재밌는 책을 발견해서 깔깔 웃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독서 기록장을 쓰기도 했다. 오후가 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도서관에는 계속 우리 둘 뿐이었다. 더 있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도서관을 나섰다. 책을 스무 권도 넘게 읽은 탓에 목에서 피 맛이 났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목이 아프다는 내 말에 겸이가 말했다.

“엄마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많이 매일 읽어줬잖아.”

 그렇다. 나는 하루에 몇십 권씩 겸이를 안고 책을 읽어줬었다. 늘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기꺼이 읽어줬던 기억이 떠오르며 겸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서 어떤 공부도 봐주지 않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한 가지가 바로 책 읽어주는 거였다. 미성숙한 엄마인 내가 그래도 이것만큼은 누구보다 잘해주고 있다고 자부하던 부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서서히 잃어버렸던 것 같다.

 “저는 오늘 책 축제의 날을 보내서 기뻤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겸이의 감사 기도를 들으며 앞으로 게으름 피우지 말고 아이의 기쁨을 지켜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 우리 둘만의 책 축제가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야구에 빠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