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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05. 2023

바둑

  
 내가 어렸을 때도 지금도 아빠의 취미이자 특기는 바둑이다. 지금은 컴퓨터로 바둑을 두시지만 옛날에는 TV로 대국을 보고, 직접 바둑판에 복기해 보며 바둑 연습을 하셨다. 어린 내 눈에 바둑판 위에 바둑알을 놓는 아빠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바둑에 관심을 보이자 아빠는 바로 학원을 등록해 주셨고, 그렇게 7살의 나는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은 참 재밌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의 수 싸움이 내 성향에도 잘 맞아 나는 꽤 빠르게 실력이 향상됐다. 학원은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끼리 대국을 통해 성적순으로 자리를 재배치했다. 제일 못하는 반 맨 뒤에 앉았던 나는 매주 한 칸씩 앞자리로 전진하는 재미까지 더해져 바둑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 원장님은 달마다 바둑대회를 전원 참가시켰었는데, 유치부, 여학생부, 1학년 부~6학년 부 이렇게 여덟 부로 나뉘어 출전할 수 있었다. 우리 학원에서 제일 잘하는 반인 6시 반 상위권 오빠들은 대회에서 각 학년부의 트로피를 쓸어오곤 했다.  그래서 그 오빠들이 학원에 등장하면 다들 우러러봤던 기억이 난다. 오빠들이 단상 위에 올라가 트로피를 받고 내려오는 모습이 강렬했다. 첫 대회 참가 후, 자극받은 나는 더욱 열심히 바둑 공부를 했다.

 처음으로 트로피를 받았던 쌍용배 여성 바둑 대회는 잊을 수가 없다. 쌍용배는 성인들도 있어서 그동안 참가했던 학생 바둑대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어른들이 가득한 대회장에서 고작 여덟 살이었던 어린 나는 엄청난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국이 시작되고 나는 계속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침착하려 노력했다. 첫 판을 이겼을 때, 어른과 동등하게 대결해서 이겼다는 기쁨과 자신감이 더해져 더욱 대국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날 대국 두는 나의 모습을 원장님이 사진으로 남겨주셨는데, 어찌나 날카로운 눈으로 집중하고 있는지 볼 때마다 나 스스로가 기특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엄청 집중하면 떨리는 마음도, 주위에 보이는 어떤 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 날이다. 나는 장려상 트로피를 탔고 원장님은 엄청 기뻐하시며 나를 바둑프로기사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초등학교 내내 내 장래희망은 바둑프로기사였다.

 내가 처음으로 우리 학원 일등 자리에 앉게 된 건 11살 때이다. 매달 나가는 대회에서 트로피를 타오고, 대회 중 나의 대국을 다른 학원 원장님들이 모여서 구경하던 시절이다. 대회를 나가다 보면 특히 잘하는 학생을 둔 몇몇 학원들이 있다. 그 학원의 에이스들과 우리 학원의 에이스들의 싸움이 재밌었다.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며 달마다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그런 에이스들의 대국은 각 학원 원장님들도 궁금하고 재밌으셨던 것 같다. 내가 다른 학원의 에이스랑 붙고 있으면 어김없이 우르르 오셔서 구경하시는데, 난 그 시선들이 제일 부담되고 떨렸다. 특히 우리 학원 원장님이 보실 때가 가장 긴장됐는데 그럴 때마다 더욱 대국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누가 구경하러 온 지도 모를 정도로 대국에 몰두하는 것이 가능해졌었다. 대회는 대진운도 중요하다. 랜덤으로 토너먼트 대진표가 나오는데, 초반부터 에이스들끼리 붙게 되면 둘 중 한 명은 2~3등 트로피까지 놓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초반부터 떨어지게 되면 그냥 밖에서 대회가 끝날 때까지 놀면 된다. 가끔 일찍 떨어진 날, 떨어진 애들끼리 공원에서 놀았던 것도 나름 즐거운 추억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밤에 내가 진 대국을 여러 번 복기해 보며 분해서 잠을 못 이루긴 했지만.       

 바둑을 두다 보면 사람별 특징이 있다. 바둑에도 성격이 드러난다. 덜렁거리는 친구는 꼭 방심해서 실수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뒤집으면 된다. 무조건 싸움을 거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친구는 싸움에 응하는 척하며 내실을 튼튼하게 다지면 이긴다.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는 친구는 책략이 필요하다. 약간의 꼼수를 두며 꾀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나만의 전략을 갖추며 나는 점점 더 발전해 나갔다.

 그런데 내가 4학년 때, 원장님 딸이 우리 학원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와 2년 정도 만에 나와 맨 앞자리를 엎치락뒤치락했다. 이 친구는 실수도 잘하지 않고,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하며 틈이 없었다. 단 한 집도 허투루 내어 주지 않는 아주 꼼꼼하고 냉정한 플레이를 하는 친구였다. 본능적으로 이 친구는 곧 나보다 훨씬 잘 두게 될 거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기원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연구반이었는데, 타고난 재능이란 게 뭔지 실감하고 나니 바둑 권태기가 시작되었다. 그런 나의 변화는 대국으로 단번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원장님의 질타가 이어지며 더욱 흥미가 떨어졌다.

 그러던 중 1단 단증을 따게 되었다. 지금은 어떤 난이도와 방식으로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던 1단 단증 시험은 급수와 달리 굉장히 따기 어려웠다. 필기시험도 어렵거니와 실기 시험 또한 철옹성 같았는데, 실제 프로기사 3명과 대국해 두 번 이상 이겨야 했다. 물론 몇 점 깔고 두긴 하지만 이분들도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웠다. 보통 실기 시험에서 많이들 떨어지곤 했다. 그런데 내가 1단 단증을 한 번에 따버린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다시 얻게 되면서 나의 바둑 권태기가 끝났다. 타고난 재능이 부럽긴 하지만 나는 노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학교1학년 입학 그리고 기원 입단을 앞두고 엄마가 바둑을 그만뒀으면 한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길 바라셨다. 지금은 바둑 중학교&고등학교, 대학교 바둑학과가 있지만 그 시절에는 바둑 학교가 아예 없었다. 그 시절 기원에 다닌다는 것은 모든 학교 공부 및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앞서 우리 학원 1등이었던 오빠가 중학교 내내 기원에 다니며 고생하다 결국 고등학생 때 바둑을 포기한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 나도 선뜻 자신이 없었다.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바둑에 올인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바둑 외길을 걸을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때는 한 가지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걸고 용기와 확신을 가지기엔 나는 너무 어렸고 무서웠다. 그렇게 나는 바둑을 내 인생에서 내려놓았다.

 원장님의 딸은 나와 다른 선택을 했다. 중,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기원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봤고 지금은 바둑프로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친구의 프로 입단식에 다녀온 날, 기분이 이상했다. 바둑 격언인 ‘사소취대’가 떠올랐다. 위기십결 중 하나인 ‘사소취대’는 작은 것을 내어주고 큰 것을 취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큰 것을 얻기 위해 당장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작은 것에 집착하면 큰 것을 잃게 된다. 그래서 작은 것과 큰 것을 잘 판단한 후, 욕심을 버리고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갑자기 내가 선택을 잘 못해서 큰 것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쨌든 그때는 바둑이 ‘소’였다는 나의 선택이었고, 평범한 학생으로서 쌓은 추억들도 많기 때문에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시작은 해봤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긴 한다.
                      
 바둑은 누가 한 수 더 읽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바둑판을 보고 머릿속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암기력 대결이기도 하다. 또 엄청 많은 경우의 수 속에서 어떤 지략을 세우는지도 중요하다. 이런 지략 싸움 와중에 실수하지 않는 차분함과 기회를 놓치지 않는 냉철함,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하는 판단력,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반대로 마음을 읽히지 않기 위한 포커페이스, 좋은 수를 찾기 위한 집중력, 끝까지 경계를 놓지 않고 두는 인내심 등 많은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바둑을 통해 배우고 연습된 기술들은 크면서 상황대응력, 문제해결능력, 미래 예측 후 대비, 복기로 연습한 잘못된 원인 찾기, 취할 것과 버릴 것의 가치 판단, 오랜 시간 집중하며 앉아 있을 수 있는 엉덩이 힘 등 내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젠 7살의 내 아이가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와 대국을 두기 위해 오랜만에 바둑판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자석처럼 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붙어버리는 바둑알에 마음이 뭉클했다. 바둑알의 느낌, 바둑판에 돌이 놓이는 명쾌한 소리, 통 속 바둑알들의 달그락 거리는 부딪침... 여전히 익숙하다. 서로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은 것들을 배웠듯, 내 아이도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언젠가 아이가 엄마와의 대국, 외할아버지와의 대국을 즐겨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처럼 바둑을 애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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