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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29. 2023

괜찮아

아빠표 걱정


 “몸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

 수화기 너머로 내 기침 소리를 들은 아빠의 타박 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타박이 아니다. 걱정된다는 뜻이다. 내가 아픈 것이 속상하다는 뜻이다. 아빠의 걱정은 늘 타박으로 표현된다. 이럴 때마다 마음 상하지 말자고 애써 정신을 잡지만 순간순간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빠는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내 마음을 다독인다.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못마땅해하는 아빠와의 전화를 끊고서 마음이 씁쓸하다.

 아빠는 어려서부터 나에게 늘 모든 일의 책임은 변명의 여지없이 스스로가 지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친구가 내 물건을 잃어버려도 빌려준 내 탓, 누가 내 물건을 훔쳐가도 간수를 못 한 내 탓, 누가 뛰어가며 나를 툭 쳐서 다쳤어도 주변을 잘 주시하지 못한 내 탓, 누군가에게 감기를 옮아도 몸 관리 못 한 내 탓. 불가피한 일들도 주변 탓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져야 강해진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어릴 땐 아파 죽겠는데 걱정은 못 해주고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고도, 명백히 저 사람 잘못인데 왜 탓하지 말라고 하냐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대들기도 했었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들이 왜 그저 내 책임인 건지 늘 억울했다. 어차피 대들어봤자 나만 손해라는 걸 깨달은 후론 울분을 꾹꾹 누르며 대화를 빠르게 종결시켰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혼을 하고 걱정을 걱정으로 표현하는 시부모님을 보면서 아빠가 타박하는 것에 대한 분노는 더욱 깊어졌다. 굳이 듣기 싫은 소리 들을 필요가 있나? 아프면 부모님과 통화도 안 했고, 하더라도 아픈 걸 철저히 숨겼다. 자주 안 보니 괜찮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 아빠의 타박을 들을 때면 울분이 폭탄 터지듯 터졌다. 물론 겉이 아닌 속으로. 그래서일까? 잊을만하면 주기적으로 악몽을 꿨다. 부모님 앞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꿈. 꿈속에서 나는 마구 소리치고 우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 괴로워한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울부짖다가 눈물로 흠뻑 젖은 베개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리고 이 꿈을 꾼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더러웠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할 줄 아는 요리가 하나도 없었던 나는 요리교실을 다녔다. 꽤 오래 다니다 보니 한 선생님과 친해졌다. 우리의 나이는 스무 살 이상 차이 났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 선생님은 나를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타고난 성격과 길러진 성격이 워낙 달라서 양극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셨다. 나는 선생님한테 성격 검사를 받은 후, ‘엄마의 마음 열기’라는 책으로 수업을 받았다. 그 수업을 통해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크게 얻은 것이 바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엄청 높고 큰 산 같은 존재였다. 모든 것에서 모범적인 분들, 나에게도 엄격하지만 본인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하신 분들이셨다. 부모님에 대한 울분을 드러낸 나에게 선생님은 부모님 또한 받지 못했던 두 분의 어린 시절을 내가 알아줘야 한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알게 되었다. 부모님도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각자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에 혼자 책임지며 외롭게 자랐다는 것을. 어른의 보호 없이 온갖 세상 풍파를 겪으며 꿋꿋하게 버텨낸 부모님에겐 외동딸인 내가, 게다가 타고난 성격이 두 분에겐 낯선 내가 심히 걱정되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배우지 못했고 받아 보지 못했으니 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되 대물림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셨다. 이해가 저절로 됐다. 그리고 절대로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때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또 아빠의 타박을 걱정으로 바꿔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의 여유가 바닥나 있는 상태에서 듣는 아빠표 걱정은 아직도 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전화를 끊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는데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어느 약초학자가 각종 염증 질병에 좋은 음식을 정리해 놓은 글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잘 챙겨 먹고 아프지 말라고 걱정해 줄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배웠다. 그리고 다정한 걱정은 남편에게 받고 있다.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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