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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09. 2023

특별한 아이

도치엄마의 사랑


“아기 때는 천지를 안단다.”

 셋째 이모가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다. 아기들이야말로 세상을 다 안다고 하셨다.
조리원에서 순둥이로 통하던 겸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180도 변했다. 셋째 이모가 봐주시는 2주 동안 겸이는 아주 많이 울었다. 이모가 가시고 겸이와 둘만 남은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겸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겸아! 네가 계속 울면 엄마랑 있을 수 없어. 엄마는 다른 사람을 불러올 거야. 겸이가 엄마랑 있고 싶으면 울지 않아야 해. 알겠지?”

 태어난 지 30일밖에 안 된 갓난쟁이 겸이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겸이는 순둥이 아기로 돌아왔다. 그런데 순둥이 아기 겸이가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만 보면 다시 이유 없이 울어대는 모습을 보며 이모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아는 걸까? 어쩌면 정말로 아기가 천지를 아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를 알던 아기가 7살 어린이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겸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오랜만에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봤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부와 아이가 나왔다. 부부의 대화는 세 마디가 넘어가면 싸움으로 번졌다. 그렇게 부부가 말싸움을 시작하면 아이는 방에서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이 나왔다. 나도 부모가 싸우면 아이가 불안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불안한 모습을 직접 보니 그 아이의 얼굴 위로 겸이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나와 남편도 겸이 앞에서 왕왕 싸우곤 했기 때문에, 그럴 때 겸이가 저렇게 불안해하고 있었겠다 싶어서 걱정이 됐다. 겸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본 이야기를 했다. TV에서 어떤 엄마 아빠가 아이 앞에서 자주 싸우더라, 그래서 그 아이는 방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걸 봤다고 했더니 첫 질문이 “그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였다. 그래서 이혼을 앞두고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데 엄마는 그 아이를 보면서 겸이 생각이 났어. 엄마 아빠도 겸이 앞에서 싸울 때가 있잖아. 그럴 때 겸이도 많이 불안했겠다 싶더라고.” 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랬더니 겸이는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는 걸 알고,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 걸 알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고. 싸워도 화해할 걸 알아서 겸이는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 다행이다 싶으면서 고마웠다. 아이는 대체 어디까지 보고 읽는 걸까? 아이는 가끔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느 날은 겸이에게 “엄마가 아빠한테 서운한 게 있어서 그걸 얘기했어. 그래서 아빠가 사과를 한 번 했거든? 그런데 엄마 마음이 아직도 안 풀려”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사과 한 번에 풀리지 않는 화도 있다며 겸이도 그런 적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때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화를 풀었다고 하면서 엄마도 마음을 조금 추스르면 될 것 같다는 겸이의 말에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어떻게 스스로 화를 풀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다음에 생각나면 방법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본인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공감해 준 뒤,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겸이에게 위로를 받았고 납득까지 되었다. 어쩐지 어른과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겸이가 조금 더 크면 나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할지 기대됐다.

 경찰관, 소방관, 우주비행사, 고고학자 등 꿈이 자주 바뀌는 겸이에게 요즘은 꿈이 뭔지 물었다. 겸이의 꿈은 고고학자에서 아직 변하지 않았다. 왜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지 물었더니, “공룡 뼈에서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특징을 찾고 싶어! 그리고 아르켈론이나 데이노수쿠스 같은 원시동물들을 연구하고 싶어. 사람들이 자세히 연구 못 했거든.”이라고 대답한다. 대답을 듣자마자 소름이 오소소 끼쳤다. 나도 7살 때 내 꿈이 있었다. 그런데 왜 되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는 그저 단순했다. 나는 겸이처럼 확실하고 매력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겸이가 정말 특별한 아이로 느껴졌다.

 “겸아, 엄마가 겸이한테 넌 특별한 아이라고 이야기하잖아. 사실 겸이가 특별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건데, 이제는 정말로 겸이가 특별한 아이가 된 것 같아. 진짜 특별해서 특별한 아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엄마는 7살 때 겸이 같은 생각 못 했어. 지금 어른들 중에도 겸이 같은 생각 못 하는 사람도 많을 걸? 겸아, 넌 정말 특별한 아이야.”라고 했더니, 미소 띤 겸이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겸이는 자기 것이 있는 아이다. 책 한 권을 읽으면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고르고 자기만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아이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이 뚜렷하다. 내가 겸이의 성격 중 가장 좋아하는 면이다. 조금씩 더 자세히 명확한 설명을 할 수 있게 된 7살 겸이의 생각들을 듣고 있으면 8살, 9살의 겸이가 무척 기대된다. 얼마나 특별한 생각들을 할까? 얼마나 특별한 사람이 될까? 평범한 아이를 내가 특별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내 아이가 겸이고, 나에게 겸이는 정말 특별한 아이라는 것이다.

 어제 유치원에서 겸이가 받아 온 실습 선생님의 편지에는 ‘뭐든지 천천히 다 해내는 겸아’라고 쓰여 있었다. 이 한 줄도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다. 겸이는 유치원에서도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끝까지 해내는구나 싶어서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겸아, 엄마는 다른 아이는 필요 없어. 아무리 예쁘고 착하고 똑똑해도 겸이가 아니면 싫어. 엄마는 겸이 너를 사랑하는 거야. 넌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아이야.”

 나는 내 아이가 세상 밖에서 아무리 깎이고 깎여도 끄떡없는 보호막을 꾸준하게 쌓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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