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9살 때, 성당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권리를 부여받는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봤다. 고해성사는 죄를 지은 신자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는 성사이다. 쉽게 말해 나의 죄를 하느님께(매개자 역할을 하시는 신부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고해성사는 순서가 있다. 먼저 나의 죄를 생각하고(통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뒤(통회), 마음을 열고 죄를 고하면(고백), 신부님께서 그에 맞는 기도를 주문해 주신다(보속). 보속을 행하며 진심으로 죄를 뉘우쳤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이는 것이다.
내가 가장 무겁게 받았던 보속은 ‘묵주기도 세 번 하기’였다. 묵주기도는 각 묵주 알마다 할당되어 있는 기도문을 올리는 것인데, 한 바퀴를 도는데 보통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보속을 받은 날, 고해소 앞에서 묵주기도 세 번을 올리며 나의 죄의 무게를 깨닫고 눈물로 참회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묵주기도 세 번 이상의 보속을 받지 않으려 하느님의 말씀 속에서 열심히 일주일을 보냈고, 매주 미사에서 기도를 통해 일주일 동안 내가 지은 죄를 고백했다. 고해성사처럼 신부님께 고백하고 보속을 받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로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그러다 미사에 한 번 빠지면 다시 고해성사를 봐야 했다.
고해성사를 반드시 받아야 할 경우는 부활과 성탄시기, 10 계명에 위반된 죄를 지었을 경우, 일주일에 한 번도 미사에 참석하지 못했을 경우이다. 그냥 받고 싶을 때도 언제든 요청해서 받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부활과 성탄시기에 드리는 판공성사(고해성사) 외에는 미사 참석을 못 했을 경우에만 고해를 했다. 미사를 빠져 고해성사를 봐야 할 때면, 일주일을 되짚어 보며 나의 죄를 골똘히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약간은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나의 죄를 떠올리고 직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솔직하게 입 밖으로 고백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고해소에 들어가 성호를 긋고,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어둠을 전부 꺼냈다. 순간순간 들었던 아주 못된 마음까지도 남김없이 꺼내어 고백했다. 그렇게 고해성사가 끝나고 고해소에서 나올 때면 포근한 이불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이 따뜻했다. 신부님이 내려주신 보속 기도를 다 드리고 나면 포근했던 이불속에서 알을 깨고 나온 것처럼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에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채로 성당을 나서며 진실로 선한 일주일을 보내고 미사에 참석하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지금의 나는 냉담자이다. 매일 밤 기도를 드리고 있지만, 아이 핑계로 미사에 나가지 않은지 5년이나 됐다. 천주교 신자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 두 번은 꼭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판공성사라고도 하는데, 3년 이상 판공성사를 받지 않은 신자를 냉담자로 분류한다. 냉담을 풀려면 성당으로 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늘 오가며 집 앞에 있는 성당을 본다. ‘고해성사받고 냉담 풀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잠시 불편한 마음이 들다가 또 금방 잊는다. 신앙은 마음의 짐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내가 드리는 자발적 응답임을 앎에도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용기, 죄를 고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를 드리며 나의 일주일을 돌아본다.
특별히 죄를 고할만한 것이 없다고 잠시 생각했던 교만함을 고백합니다.
제 방식대로 신앙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용서한 오만함을 고백합니다.
매 순간마다 앞서 나의 위안과 나의 안정을 먼저 챙긴 이기심을 고백합니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며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한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죄를 작게 생각하고 자꾸 합리화하려는 아둔함을 고백합니다.
의식 없이 비양심적으로 행했던 자잘하게 많은 행동들을 고백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을 고백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리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분노를 남겨 진실로 통회하지 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저의 죄를 낱낱이 고하지 못한 위선을 고백합니다.
고해성사에 기대어 개운해지려고 한 간사함을 고백합니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