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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라샘 Oct 19. 2024

오토바이 타는 남편! 허락 따위 필요 없어

산에 오르는 이유

대학 산악부시절. 주말에는 금정산이나 경남지역 산에서 워킹과 암벽등반을 했고 방학이 시작되면 설악산과 북한산을 오가며 최소 2주간 야영을 하며 동계, 하계 훈련을 하는 게 산악부의 주 활동이었다. 계획한 하계훈련기간이 하필 장마철이면 그 눅눅한 옷을 입고 하루종일 걷고 젖은 암벽을 오르고 단 하루 해가 뜰 때면 쉰내 나는 옷들을 널어 말리다가 다시 입기를 반복하며 2주를 보내야 한다. 안팎의 질퍽한 신발은 벗어 말릴 새가 없어 통통 불어 튼 발이 무겁다. 2박 코스로 울산바위 릿지(바위능선을 따라 등반하는 것)를 하는 날은 중간 바위틈새를 이용해 먹고 쉬며 비박을 했다. 어떤 해에는 날이 너무 좋아 탈수가 올 정도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데 그럴 땐 해가 뜨기 전에 조금 더 빨리 움직여 낮에 쉬고 여름의 긴 해를 이용해 세워놓은 산행 계획대로 목표지점까지 움직여야 했다. 설악산을 거쳐 북한산 인수봉으로 암벽을 타러 갈 때면 버스 안에 진동하는 몰골과 쉰내 때문에 함께 이동하는 시민들에게 여간 죄송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첫 동계. 두려움이 커서 첫 해에는 가지 않았었다. 장비의 무게와 빙벽이 무서웠고 무엇보다 추위가 너무 싫었다. 그래도 산악인이라면 동계를 맛봐야 하지 않나?!라는 정말 쓸데없는 자존심에 결국 꽁꽁 언 설악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빙벽으로 향하는 길. 어프로치 중 4층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와 얼굴을 벽에 갈았다. 그 사고로 나의 왼쪽 무릎에는 가로로 10cm가 넘는 수술자국이 선명히 남아있고 제거되지 못한 슬개골 조각들이 아직 만져지고 있다. 앞니가 턱을 관통해 부러지며 입술 아래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산악부외 주위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산에 왜 다니냐고. 그 힘든걸 왜 하냐고.

사고로 병실에 누워있는 내내 미안함이 가득했다. 함께 간 선, 후배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가족에게 미안했고 병원이송까지 도와준 산악구조대와 다른 학교 대원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일말의 후회는 없었다. 왜 갔을까? 안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산에 다니냐는 물음에 내가 내린 답은 이거였다.

 '후회 없이 살고 싶으니까'  




같은 산악부 동기인 남편과 친구처럼 살면서 우리는 내가 하는 일,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서로 크게 관여는 하지 않는다. 남편의 취미는 오토바이 라이딩과 낚시. 누가 들으면 아내들이 싫어하는 취미를 다 가진 밉상남편이라 하겠지만 예전에 라이딩 영상을 계속 보는 남편에게 당장 가서 사라고 푸시한 것은 나였다.

나의 유년시절은 사람내음이 없었을 뿐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어서인지 꼭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물욕이나 소유욕이 없다. 지금에 만족하고 꼭 필요하면 언젠가는 생기겠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반면 남편은 없는 것에 대한 욕구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이고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이성적인 남자가 비 현실적이고 이상주의자인 여자를 만난 것이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오토바이 영상을 보는 남편에게 물었다.

"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데 당신은 무슨 재미로 살아?"

"너라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산다니 다행이네. 난 돈 벌어야지"

"너도 하고 싶은 거 해. 지금이 아니면 하고 싶어도 못할 수 있어"

"하고 싶다고 이거 저거 다 사고, 놀고먹고 하면 그럼 돈은 언제 모으는데?"

"당신이 막살고 그러지는 않을 거 아냐. 지금 딱 오토바이 하나만 질러봐. 그런다고 우리 살림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 대신 당신이 엄청 행복해질 거야. "

계속된 속삭임에 결국 남편은 중고로 바이크를 장만하고 주말 라이딩을 시작하게 되었다. 1년 사이 기변을 한 번 했고 또 2년이 지난 지금 기변을 망설이고 있다. 난 또다시 푸시 중이다. "당신 하고 싶은 거 다 해~"

후회 없는 삶. 남편에게도 해당되어야 한다.

가족을 위한 희생을 바라지도 않고 사고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지도 않다. 당장 내일 길을 걷다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객사할 수 있지 않은가?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이라면 적어도 하고 싶은 것 하나 못했던 억울한 삶보다 그거라도 해서 조금은 행복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미련이 적은 삶이었으면 좋겠다.





무척산의 피어오르는 수천 개의 반딧불을 잊을 수가 없다.

울산바위 위에서 비박을 하며 쏟아져 내리는 별들은 나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출발선의 인수봉은 장엄했고 완등 후의 인수봉은 나에게 세상을 안겨주었다.

추적추적 비 오는 여름 산행에서 나무가 흔들리며 쏟아내는 빗물에 온몸이 적셔진다.

달 밝은 밤이 그렇게나 밝은지 금정산에서 처음 알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아직 세상은 어둡고 축축하다. 하지만 산 냄새가 아침을 열어주고 있다.

공룡능선에 깔린 구름 위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선배의 도움으로 발가락 물집을 터뜨리는데 동기 녀석들이 발가락 못생겼다고 웃고 난리다.

산악부 그만둘까 봐 이쁘다 해주고, 잘한다 해주는 게 진짜인 줄 알고 계속 남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동기들을 챙겨주고 짐을 나눠지고 다들 지쳐갈 때 산가를 불러주고 항상 길을 잃고 헤매는 날 찾으러 와준 이가 지금 내 옆에 있다. 그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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