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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라샘 Oct 22. 2024

말본새

친구 엄마의 아이교육법

때는 20살 무렵의 어느 날.

"엄마 네가 그랬잖아!"  버스 안에서 들리는 어느 여중생의 통화소리. 엄마에게 왜 자기 물건을 말도 없이 버렸냐며 버스 뒷자리에서 쩌렁쩌렁 중계 중이다. 버릇없는 말투와 예의 없는 태도. 그 당시 내가 들었던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절대 저렇게 싹수없게는 키우지 않으리라!

그 각오가 너무 다져진 걸까? 지금 고오의 말투와 행동은 또래 아이들과 조금 남다르다.

아침 등교시간.  ‘고오야~’ 하면 ‘네 5분만요...’하고 5분간 뒹굴다 바로 일어나 옷을 입는다. 주말 아침은 토스트나 볶음밥을 해서 엄마아빠를 깨우기도 한다. 물론 주방은 초토화가 됐을지라도 아이의 정성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

"어머니~ 저 조금만 놀다 들어가도 되나요?" "아버지! 여기 좀 와보세요~" 밖에서 아이가 얘기할 때면 누구 하나 꼭 쳐다본다.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높임말도 신기한데 어머니, 아버지라니!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높임말을 쓰게 한 것을 시작으로 엄마, 아빠에게도 당연히 쓰게 했다. 어머니, 아버지란 존칭은 2학년 때 태권도장 어버이날 미션으로 일주일간 쓰기로 한 게 시작이었다. 강제성은 없었지만 미션이 끝나고도 일상적인 높임말과 존칭이 찰떡으로 입에 잘 붙었던 모양인지 스스로가 여태껏 그리 부르고 있다. 가끔씩 반말과 높임말도 섞기도 하고 엄마, 아빠 하며 요즘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부르는데 크게 상관은 없다. 그렇다고 고오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 예뻐 보이느냐? 그건 분명 아닐 것이고 모를 일이다.     

중요한 점은 아이가 15살이 넘어서도 부모의 훈계가 통할지, 안 통할지의 차이일 것이다. 커가는 과정에서 반항은 불가피하겠지만 그 반항에서도 결코 부모에게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된다.

 예전엔 친구 같은 부모상이 유행하더니 지금은 권위를 가져야 한단다. 양육방식도 시대적 트렌드가 있다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똑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없듯이 세상 모든 이들의 약육방식은 부모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재량을 갖고 아이의 성향에 맞춰 달라야 한다. 그래서 유명 아동전문가들의 모든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를 필요는 없다. 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하겠으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성격상 고오에게 하는 육아는 친구보다 보호자역할이 확실한 소위 권위 쪽이다. 여느 모들과 같이 불안함과 조급함이 머릿속에 가득하고 앞으로 어떻게 커갈지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지만 아이 앞에서 만큼은 흔들림 없이 단단한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집안일에 잼병인 장난기 많은 허당엄마의 모습과 훈계할 때 나오는 카리스마는 분명 구분이 되고 있다.       

        



독학으로 도전만화에 2년째 연재하며 웹툰작가를 꿈꾸는 초등 5학년 고오. 본인이 편하고자 자른 짧은 커트머리는 남자라고 오해를 많이 받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용돈이 부족하면 벼룩시장에서 장당 1000원씩 캐리커쳐를 그려주며 목표치인 만원을 훌쩍 채우고야 만다. 친구들에게 연연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놀며 용기 있게 누군가를 도와줄 줄 아는 이타적인 아이.

단단한 보호자가 되기 위해 했던 나의 양육방식을 고오를 아는 주위분들이 많이 물어보신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휘둘림 없이 내면이 단단한 아이로 잘 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싶어 칭찬에 감사하며 나의 양육방식을 차고 차곡 다이어리에 정리해 둔다.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엄마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지만 괜찮다면 '친구 엄마'의 육아일기라고 들어주면 좋겠다.

        


선택의 기로를 최소화하기

아침 등원하는 3살 아이에게 이거 입을래? 저거 입을래? 아침으로 뭐 먹을래? 신발은 어떤 거 신을 거야?라는 선택을 강요하고 끝내 좀 더 서두르자며 애걸복걸하는 모순적인 엄마가 되긴 싫었다. 만약에 “갈까?” 하고 물어봤을 때 “아니요”라는 답이 나오면 “그래 더 있다가 나가자”라고 답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먹을래?’ 가야 할 시간에 ‘갈까?’라는 불필요한 물음과 장황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탓이나 비난을 일상에서 쓰지 않기.

예를 들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 안 가고 싶다는 아이를 설득해 데려갔더니 시원하게 볼 일 보고 나온다. 그럴 때 “거봐, 엄마랑 잘 왔지?”이라는 말대신 “나와서 다행이다.”        

올라가지 말라는 곳에 올라가 결국 떨어졌다. 그럴 때 "올라가지 말라고 했지?!"라는 말 대신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다." 일기 쓰기 숙제를 미루다 결국 깜박하고 아침 등굣길에 알게 되었다. 그럴 때 "엄마가 미리미리 하라고 했지?!"라는 말 대신 "어떡하지?"라고 물으면 나름의 해결 법이 나온다.     

날씨에 맞지 않는 옷을 끝내 입고 나왔을 때 추워하는 아이를 향해 "거봐 엄마가 준 옷 입으라고 했지?"라는 말 대신 "괜찮겠어?"라고 한다.

그렇게 아까 엄마가 어떤 말을 했었느냐에 포인트를 두지 않고 지금 닥친상황에 대해 집중하길 원했다.  

    


약속으로 신뢰 쌓기.     

마트에 가기 전 장난감 오천 원 이내 한 개를 약속하고 나간다. 그럼 아이가 고른 장난감 중 딱 한 개만 살 수 있고 천 원짜리 다섯 개도 안된다. 그런데 천 원짜리 장난감에 너무 아쉬워하면 솔직히 나도 사주고 싶다. 하지만 예외를 둘 수는 없으니 이렇게 말한다 "다음에 오게 되면 엄마가 사 줄게"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이거 기억나? 엄마가 다음에 마트에 가면 사준다고 했던 거. 오늘 마트에 갈 일이 있어서 가장 먼저 챙겼어."라고 아이가 까맣게 잊고 있던 장난감을 사서 들고 간다. 그렇게 다음에 사준다는 말, 다음에 가자는 말, 다음에 하자는 말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지킬 수없는 빈말은 하지 않는다.



보상대신 응원과 격려를 해주기.

고오가 그림대회 1등이나 시험 100점 받았을 때 기특하다 장하다며 짧게 칭찬을 해 준다. 대신 줄넘기 심사에서 떨어졌거나 시험 성적이 예상치 못하게 낮게 나왔을 때 특별한 날처럼 치킨을 시켜준다. 보통은 잘한 게 있으면 맛있는 거 먹는 날이겠지만 난 못했을 때 더 신경을 써주었다. "실패는 좋은 결과로 가기 위한 과정이란 거 알고 있지? 애썼다"라는 치킨과 함께 들이미는 틀에 박힌 멘트.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런 말을 자주 듣고 자라서인지 잘해 낸 것에 의연하고 도전하는 것에 큰 망설임이 없다.




어려서부터 행복을 느껴본 아이가 커서도 행복해질 것 같은 마음.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 결핍이 있으나 크게 연연하지 않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 무엇보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자기 밥벌이를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교육 목표이다. 물론 좋은 인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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