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
내가 아주 어린 나이에 얼음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발끝에 무언가 닿는 느낌 차가움보다 더 무서운 감각. 그리고 벗겨지는 신발. 어떻게 구출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발끝에 느껴진 그 무언가가 어린 시절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극도로 소심했던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못 하고 결국 자리에서 실수를 해 조퇴했었다.
문방구 뽑기에서 1등에 당첨되어 대형 튜브를 상품으로 들고 신나게 집으로 향했던 순간.
초등학교 2학년. 거짓말을 했다가 난생처음 엄마에게 혼났던 날이 있었다.
이렇듯 나의 유년 시절의 무서움과 부끄러움, 벅찬 감정들이 훅 들어온 순간들이 마치 사진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어떤 기억들은 나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고 어떤 기억들은 기쁨이 되어 주었다.
나는 생각보다 어린 시절의 각인된 기억이 많다. 그래서인지 육아와 교육에 있어 아이가 느낄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고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나의 육아는 나의 기억과 감정에 빗대어 행해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내가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이나 싫은 말을 하지 않으며 훈육하면 되는 것이다.
고오는 5년이란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아이지만 아이가 7개월이 되던 해, 결국 주 2회 언니에게 맡기며 일을 시작했다. 나의 일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평생을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이 나에겐 도자기였기에 육아의 필수 조건인 집안일과 요리는 늘 뒷전이었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집안일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그 때문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늦게 들어와서 미안하고, 유기농 식재료를 챙기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고, 마트에서 사 온 나물 반찬을 먹이는 것도 늘 마음에 걸린다. 아이가 아토피로 긁거나 감기에 걸릴 때, 머리에서 냄새가 날 때조차 ‘내가 잘 챙기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자책하게 된다.
특히 요리를 잘하는 엄마들을 보면 늘 주눅이 든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는 당당하려고 한다. 부족한 엄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맛은 없을지 몰라도 주방에서 끙끙거리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는 못한다’라고 인정하면서도 ‘못하니까 안 한다’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요리를 못하지만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내가 음식을 태우거나 짜게 만들면 아이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나를 다독인다. 어느새 내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듯 아이도 나를 공감하고 이해하려 한다.
고기를 또 태웠다. 조용히 주방문을 열어 환기시키는데 탄 냄새를 맡으며 아이가 다가와 날 위로한다.
"어머니, 누구나 32번의 실수는 할 수 있는 거예요. 괜찮아요" 라며 토닥여준다.
"32번 아니거든" 투덜거리는 날 뒤로하고 다 들리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사람은 참 좋은데..."
"야!"
웃프다는 표현이 딱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