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유니콘의 자기주도 학습

타고난 기질 끌어내는 법

by 울라샘

고오는 6학년이 되도록 단 한 번도 공부방이나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방과 후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7살 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다니는 건 태권도장. 이사와 커리큘럼 변경으로 도장을 세 번이나 바꿨지만, 태권도는 줄곧 놓지 않았다. 공부가 아닌 순수 운동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4학년 때, 고오가 원해서 2품을 딴 이후 품새시간을 갖지 않고 순수 레크리에이션, 기초체력 다지기로만 다니고 있다. 지금 사는 동네엔 운동 학원 선택지가 많지 않아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하교 후 고오의 하루는 다소 낯설 만큼 여유롭다. 공부 시간은 하루 한 시간 남짓. 미디어 학습지로 국어와 수학을 하고 요일을 나눠 필사와 영어, 일본어 교재를 돌려가며 스스로 공부를 해나간다. 나머지 시간은 전부 고오의 자유 시간이다. 요즘 아이들 중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표를 가진 아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런 자기주도 학습의 흐름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나는 저학년 시절부터 고오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4학년이 되면 공부방을 다녀야해.”

그저 마음의 준비를 시켜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4학년이 되자 고오는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머니, 공부방 안 가고 싶어요. 대신 집에서 열심히 공부할게요.”

그룹으로 하는 요리 방과 후 수업조차 힘들어하던 고오였기에 그 말을 단순히 지나칠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도 하고 집에서 미디어 학습지를 성실히 해내는 모습도 그동안 확인했으니 나는 마음을 접고 믿어보기로 했다. 성적이 정말 바닥이었더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고오는 생각보다 잘 해냈다.

지금까지 단원평가와 수행평가 결과는 학원 친구들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적을 향한 큰 욕심이 없던 부모였기에 그 점은 오히려 아이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공부는 스스로 관리한다. 매일 할 공부를 자신의 플래너에 정리하고 기록한다. 나는 주 1회 불시에 플래너를 열어보며 무작위로 문제 하나를 골라 고오에게 설명하게 한다. 아이에겐 긴장되는 순간이지만 나에겐 짧고도 강력한 점검이다.

하지만 아이를 너무 몰아붙이면 안 되는지라 나름의 지켜야 할 원칙을 가지고 있다.


틀린 문제에 화내지 않기- 오답노트로 다시 하기.

검사 시간은 10분 이내로 끝내기.

공부를 대충 한 날은 굳이 따지지 않기.

잘한 부분을 칭찬하고, 어려웠던 부분엔 피드백 주기.


고오가 2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써 내려간 플래너 한 권이 끝났을 때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세세히 챙기지 못한 것이 미안했지만 아이는 그 공백을 스스로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늘 생각한다. 아이의 성장엔 타고난 기질이 80%, 환경이 20%가 영향을 주는 거라고.

고오는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단체 활동보다는 자기만의 세계를 꾸리는 걸 즐겼다. 그런 기질을 존중하고 기다려줬더니 고오는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사회가 평균적으로 말하는 기준치를 따라잡기 위해 나 또한 고오에게 한자, 영어, 수학 등 순차적이고 체계적인 주입식 교육을 따라 했다면 결코 유니콘이란 별명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고오는 웹툰 작가라는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매일 연재를 멈추지 않고, 시간을 나누어 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세운다. 누구보다 자신의 속도를 잘 아는 아이. 그 발걸음이 빠르진 않지만 확실히 흔들림은 없다. 그리고 난 그 모습을 믿고 보모로서의 당연한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걸 고오는 오늘도 천천히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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