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함이 주는 선물
고오가 기저귀를 하고 있을 때부터 혼자 노는 시간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인형놀이를 하든 바닥에 누워 책을 읽든 '지금 뭐 해?' 이 한마디조차 방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어 동요도 틀지 않았다. 그냥 고요함. 그 속에서 나는 빨래를 개고 설거지등 집안일을 하고 아이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며 각자의 일을 했다.
심심할 틈을 주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심심함’을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싶었다.
장난감? 솔직히 많지 않았다. 굳이 사주지도 않았다. 집안을 뒤지고 냄비 뚜껑이나 종이 상자, 나뭇가지 같은 걸 끌어다 놀았다. 무엇보다 도자기 하는 엄마이기에 집에는 항상 찰흙이 준비되어 있었고 어지럽히고 옷에 무엇이 묻든 크게 개의치 않고 위험하지만 않으면 그냥 두었다.
어른 눈엔 쓰레기 같아도 아이에겐 전부 보물이었고 놀 거리였다. 국숫발이 인형의 목도리가 되고 빈 상자가 비밀 기지가 되던 순간들.
그리고 고오을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이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은 오히려 ‘아무것도 없을 때’ 찾아온다는 것이다. 꼭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놀 거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이미 바쁘다.
어린 고오가 "심심해"라고 말할 때가 있었다.
그럼 난 "그럼, 뭘 하면 재미있을지 생각해 볼까?" 그제야 다다가 앉아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 뒤로 아이는 나뭇가지를 모으고 종이컵을 잘라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나의 큰 참견 없이 한참을 몰입하더니 그 결과물이 공룡, 뱀, 모자가 되어 나왔다. 그 완성된 것으로 역할놀이를 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미술을 전공한 사람인지라 솜씨는 보통을 넘지만 아이 앞에서는 '못하는 척', '못 그리는 척'을 했다. 그래서 아이가 네 살 당시, 발전 없는 엄마를 무던히도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옆에서 해주고, 만들어주고, 반 조립으로 꾸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 아이가 주도권을 가진 순간이 바로 진정한 놀이라 생각했다.
아이가 7살 무렵 나의 그림 솜씨를 커밍아웃했다. 갑자기 그림이 잘 그려진다며! 고오가 잘 가르쳐 준 덕분에 잊고 있었던 그림솜씨가 깨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고오가 원해서 그 뒤로도 아이의 가르침을 조금씩 받았다.
육아서에선 ‘심심함이 창의력을 키운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그런 연구도 많다.
아이가 무료함을 견디고, 그 속에서 새로운 활동을 찾아내는 경험은 문제 해결력, 상상력, 집중력을 키운다고.
반대로 과하게 장난감을 주거나 계속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여주면 아이는 쉽게 질리고 만족을 모르게 된다는 말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아이를 위해 뭘 더 해줘야 할지 고민하기 전에 잠깐 멈추자는 거다. 아무것도 없는 시간을 선물해 보자.
그 안에서 아이는 스스로 자라는 중일지 모른다.
지금도 초등 고오가 혼자 인형 놀이를 시작하면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아준다.
왜냐면 그 시간이야말로 아이가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옆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아주 대단한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