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초4, 아이폰보다 천 원이 더 큰 아이

경제교육

by 울라샘

고오는 유치부 시절부터 엄마가 참여하는 벼룩시장을 따라다녔다. 구청 행사에 일부러 신청해 작아진 옷이나 쓰지 않는 물건들을 챙겨 나갔다. 공방 문은 그날 하루 닫고 아이 손을 꼭 잡고 나서는 날. 이유는 단순했다. 천 원짜리가 오가는 날것 그대로의 ‘시장’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번 돈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음료를 사고 치킨을 시켜 먹었다. “돈은 쉽게 생기는 게 아니야.” 그런 말을 하기보다 몸으로 겪게 하고 싶었다. 어른들은 “어릴 때부터 너무 돈,돈,돈 하지 말라”라고 충고했지만 난 돈은 숫자가 아니라 흐름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초등학생 전용 카드도 나오지만 나는 반대파다. 천 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아보는 경험 없이 카드부터 손에 쥐는 건 순서를 놓치는 일처럼 느껴진다. 우선 천 원짜리 한 장의 가치를 아는 아이로 자라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벼룩시장을 오가던 고오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아이의 부탁으로 좌대 하나를 신청해 줬다.

이제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의 판매 품목은 바로 ‘재능’.

당시 고오는 ‘농사꾼 호미’라는 웹툰을 네이버 도전만화에 주 2회 연재하던 시기로 그림 실력에 자신감이 넘칠 때였다.

간판 문구는 '꼬마 캐리커쳐 1000원.'

한 명을 그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5분이 넘게 걸림에도 불구하고 고오도 집중력있게 그려냈고 고맙게도 친구들 덕분에 다섯 명을 그려 생애 첫 5,000원을 벌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번 돈이었고 ‘용돈 벌이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초등 5학년이 된 이후에도 고오는 나와 함께 봄, 가을마다 마을 벼룩시장에 빠짐없이 참여한다. 금액은 그대로지만 장사 수완이 좋아져 엽서는 1000원, 수첩은 2000원으로 구성해 나름 고객 니즈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본인의 물건을 살 때 모아둔 돈을 조금 보태기도 하고 장사한 날에는 수입의 절반인 5000원으로 엄마아빠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멋진 아이가 되었다.

언제 하루는 친구들이 사용하는 최신 아이폰의 가격을 듣고는

“그걸 사려면 캐리커쳐를 몇 장이나 그려야 하지?”라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비싼 물건을 자력으로 상상해 보는 것 자체가 돈의 가치를 체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적어도 등골브레이커는 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다이소에만 가면 여느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이 무장 해제되며 플렉스를 일삼지만 그 또한 ‘자기 돈’으로 하는 소비이니만큼 나는 지켜보기로 했다.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 토요일 아침.

고오가 분주히 무언가를 챙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들려온 현관문 소리.

‘어디 가는 거지?’

베란다 창을 열어보니, 큰 수레를 드르륵 끌고 아이가 어디론가 나가고 있었다.

아차, 어젯밤에 “내일 캐리커쳐 장사 나갈 거예요” 하던 말을 흘려들었던 게 떠올랐다.

설마 했는데, 진짜 혼자서 길거리 캐리커쳐에 도전하는 길이었다.

나는 자고 있는 남편에게 아이를 챙겨보라고 말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2시간쯤 지나 남편에게서 사진 한 장과 전화가 왔다.

보내준 사진에 웃음이 터졌다.

아파트 어귀 공원에서 고오가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친구와 함께 컵라면을 먹으며

“캐리커쳐 천 원이요~” 하고 외치는 모습.

아이 혼자 그 큰 수레를 끌고 가판을 펴고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아파트 카페에 누군가가 올린 고오의 소식에 폭발적인 반응들이 모였다.

‘스스로 용돈을 버는 아이라니, 대견하다’,

‘외국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참 야무지고 용감하다’

'또 봤으면 좋겠다'라는 모두 긍정적이고 응원의 말들이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너무 많은 관심에 걱정이 엄습했다.

그날 저녁, 노파심 많은 나는 아이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했다.

“고오야, 오늘처럼 혼자 나가는 건 절대 안 돼.

장사는 사고팔고만 있는 게 아니야.

정말 많은 사람들과 변수가 생길 수 있거든.

하고싶을땐 지금까지처럼 꼭 허가된 벼룩시장에서 엄마랑 함께 움직이자. 알겠지?”


오늘 장사가 너무 즐거웠던 고오에겐 내 말이 좀 김샌 소리였을 거다.

하지만 의외로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바쁜 엄마라 살짝 미안하기도 한 마음.

그렇게 오늘도 엄마는 배우고 아이는 자란다.



캐리커쳐그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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