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엄만들은 이혼을 꿈꾼다.
"어떻게 언니는 아이랑 안 싸워요?"
친한 동생의 질문의 의미를 잘 안다.
요즘은 보통 5학년때 찾아온다는 사춘기에 부쩍 아이 눈치를 본다거나 서로에게 짜증을 내며 하루하루 전쟁통에 산다는 또래의 엄마들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심지어 초 2학년인데도 서로 싸운다는 말이 sns에 떠돈다.
물론 나도 아이의 못마땅한 행실로 한 소리하며 얼굴 붉힐 일이 있다. 하지만 감정싸움이 된다거나 서로에게 상처 주며 기를 세우는 일은 없다.
초6학년의 고오를 보면 문득 ‘아직 사춘기가 안 온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 분명 한 해, 한 해 달라짐을 느끼고 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해지고 원하는 주장을 펼친다.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도 안 할 때가 있고 일단, 외부인(?) 출입금지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한다며 나를 꼭 껴안고 부부가 TV를 보고 있으면 그 사이에 파고들어 장난치는 고오의 모습을 보면 흔히 생각하는 반항적인 사춘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이와 크게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방 청소하니 마니, 책 읽니 마니, 자니 안 자니, 공부 좀 하라 마라, 운동 좀 해라, 그만 먹어라, 폰 그만 봐라... 일상의 거의 모든 대화 속에 싸움의 씨앗이 숨어 있다.
나도 고오에게 잔소리를 한다.
“좀 씻지? 정수리 냄새가 집안에 퍼질 것 같아.”
“방 청소할 때가 왔네? 언제 할래?”
하지만 소위 말하는 반항하는 아이와의 기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잔소리는 짧고 뜸하다.
왜냐하면, 존재로 귀하니까. 이 무슨 생뚱맞고 피식, 웃음새는 식상한 말인가? 싶겠지만
어쩜 이 책은 이 글을 쓰기 위해 달려온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었는지 말이다.
맞벌이하며 어린아이를 키우는, 이제 막 엄마가 된 나 역시 왕족같이 살아온 경상도 남자가 쉽지 않았다. 나 혼자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쉬는 날이 없는 하루하루가 힘겨워 이혼이란 단어가 목구멍에 맴돌았었고 내 발등을 내가 찍었음을 백 번 천 번 후회하면서도 또 그 남자가 만만하지 못해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했다. 모든걸 튕겨내는 그 사람과 싸움이 싫었다.
많은 초보엄마처럼 일도 육아도 살림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그러던 아이가 만 5세쯤 어느 날. 남편을 향해야 할 화를 간헐적으로 아이에게 쏟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잦은 실수와 몇 번을 말해도 안 되는 아이의 고집이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딸에게조차 무시받는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나름의 돌파구로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육아강좌며 책과 유튜브 영상을 보았었다.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고리즘이 날 법륜스님의 즉문즉답 영상으로 초대했다. 분명 예전에 봤었던 영상이었는데 그날따라 귀에 스님말씀이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박히는 이상한 느낌.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와 욕심을 버리라고?'
그 동안 남편에게 내가 바라는 게 많아서 꼴 보기 싫은 걸까?
아이에게 기대가 큰 만큼 따라주지 못해 답답한 것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남편은 츤데레였고 딸은 커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비소로 느낄 수 있었다.
남편에게 거는 기대치는 낮았다. 낮은 만큼 버리기 쉬었다.
내가 밥 했으니 설거지는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청소하고 세탁기 돌렸으니 빨래 좀 널어주면 안 되나? 같은 사소한 기대치말이다.
딸에겐 이빨 하루 안 닦으면 어때?! 편식 좀 하면 어때?!
습관 들인다며 매일 혼내고 우는 상황이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새 혼자 양치하는 초등학생이 되어있다.
그렇게 아이가 6세를 맞이한 후 아이존재 그대로를 감사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단지 모든 실수는 성장과정의 필수조건이며 자기 밥벌이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건강하고 평범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포커스를 맞추니 크게 화 낼 일이 없던 것이다.
그렇게 학교, 학원, 집에서의 자기 학습이라는 세 가지를 해냈다면 그 외의 것들은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노출을 최대한 늦춘 것이 도움이 됐다. 폰이 없었기에 웹툰연재와 일본어 습득도 스스로 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깔끔했으면 좋겠고,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고,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고, 이왕 배우는 그림도 춤도 뛰어났으면 좋겠고 하물며 외모도 출중했으면 좋겠다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욕심이니까.
자기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저녁 참에 웹툰작가를 꿈꾸며 꾸준히 태블릿을 끄적일 수 있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있다는 것에 아이는 행복해한다.
건강히 잘 커줘서 고마운 마음. 스스로 사람답게 잘 성장하고 있음에 대견한 마음. 난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