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고오는 외동이다.
결혼시기는 평범했지만 출산을 마흔이 가까워서 했다. 이미 노산이었기에 당연히 둘째는 계획할 여유도 체력도 없었고 어렵게 찾아와 준 아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린 초등 저학년 때까지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주말엔 아빠와 캠핑을 다녔고 평일에는 외동을 키우는 아이 엄마들과 함께 또는 고오와 단 둘이 철마다 바뀌는 전국을 누비고 다녔었고 지방에서 한 달 살기를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둘이었다면 나 혼자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있었을까?
경제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수시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딱 맞는 자녀의 수였다.
온전히 한 명의 아이에게 시간과 관심, 비용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에너지가 좋은 아이를 노쇠해 가는 부부가 번갈아가며 놀아주니 균형이 맞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취미가 생기면 장비를 사주고 여유롭게 공방 수업도 원하는 대로 조율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덕에 웹툰작가의 꿈을 꾸며 지금껏 달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외동이기에 어린 시절 고오의 상대는 대부분 나였다. 놀아주는 것도 들어주는 것도 받아주는 것도 거의 전담이다. 아이의 감정 기복이나 에너지를 그대로 받아야 하다 보니 하루가 끝나면 진이 빠진다.
그리고 노산이라는 조건. 너무나 소중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체력은 진정 사랑의 힘으로 버틴 것 같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내 편이 부모 말고 한 명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솔직히 팬데믹시기, 그동안 만족했던 외동 키우기가 힘에 부친 날들이 있었다. 함께 놀 형제자매가 없음에 아쉬워했었다. 그때 이후 사춘기에 접어든 지금 이 시점,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에게 혼이 나거나, 사춘기 감정을 혼자 삭이는 대신 형제자매가 있었다면 자기들끼리 투덜거리며 넘겼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40대 초반에 둘째를 낳았으면 어땠을까? 그때 용기를 내지 못했던 심심한 후회.
물론 그건 지나간 선택이고 지금 상황이 최선이라 생각해야 한다.
열 명의 자식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자기 할 일하며 건강하게 바르게 잘 크고 있으니 그런 욕심이 밀려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하나를 감당하는 것도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만약 지금의 나로서 다시 돌아간다면?
돌아갈 일이 없어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둘째를 무조건 낳을 것 같다.
여행? 물질적인 지원? 멀리 못가도 놀이터나 바닷가등 둘이 풀어놓으면 될 일이다. 아이에게 꿈이 있다면 스스로 언젠가 찾아갈 것이다.
나 역시 사이좋은 나의 언니 오빠들이 있어 좋았던 기억들이 가득하다. 장소가 아닌 그 들과 함께해서 좋았던 감정이 날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그렇게 서로 공감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울타리의 가족들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을 50이 턱밑에 오고서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