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은 불편함, '시간' 그리고 효용의 산물이다.
한동안 아날로그 하면서도 레트로한 감성으로 유명했던 카메라 필터 앱이 있다. 바로 구닥이다. 구닥은 일회용 카메라를 오마주해서 만들어졌다. 구닥으로 찍은 사진을 얻으려면, 3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1. 하루 24장 제한이 되며, 24장을 다 찍어야만 한다.
2. 12시간이 지나면, 24장이 리셋된다.
3. 필름 1 롤에 담긴 24장의 사진은 3일 후에 확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구닥의 성공 포인트를 레트로 한 이미지가 주는 매력과 어릴 적 추억을 회상시키는 아날로그 한 방식에 둔다. 하지만 이걸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 20대 중반인 내가 필름 카메라를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건 초등학교 시절이다. 중학생때부터 우리 집엔 디지털카메라가 있었다. 디카의 자리는 이내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 즉, 추억 때문에 구닥을 사용한다는 것엔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본질에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색스는 자신의 저서인 '아날로그의 반격(The Revenge of Analog)'에서 영국 LP판 시장을 언급했다. 본문에서 그는 2015년에 발간된 영국 보고서를 인용했는데, 18~24세가 LP판 주 소비층이고 구매자의 절반이 25세 미만이라 밝혔다. 즉, LP판을 본 적도 없는 이들이 LP판 주 소비층이란 사실이다. 이 현상 속 본질은 단순히 디지털 음악의 수학적 선택 범위에서 소거된 소리를 LP판으로 잘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디지털이 만든 획일적 경험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는 것도 설명이 부족하다. '아날로그이자 새로운 경험'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그 본질은 '시계가 뜻하는 상징'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들 남자가 취업하면, 세 가지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집, 차, 시계. 시계는 역사적으로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 시계는 시간을 알고자 만들어진 도구다. 시계 곧 시간을 상징한다.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은 누구나 하루 24시간씩 동일하게 갖는다. '시간'은 누구나 갖고 있는 동시에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자신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한다. 그 '시간'동안 누군가는 음악, 운동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낸다. 즉, '시간'은 그 사람의 자본과 자유를 뜻한다. 시계 또한 그렇다.
구닥과 LP판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날로그이기에 오는 불편함이다. 디지털은 많은 편함을 가져다줬다. 스마트폰을 켜서, 카메라 모양의 아이콘을 터치하면 고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삼성의 갤럭시 S9이 조리개 값의 조정범위를 확대해 DSLR급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반면 구닥은 하루 찍을 수 있는 장수가 제한되며,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도 불가능하다. LP판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은 음악 앱을 켜서 플레이 아이콘만 터치하면, 내가 원하는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LP판 LP판을 구매하고 관리해야 하며, 턴테이블이라 불리는 LP판 플레이어가 별도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를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 이만저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시대 아날로그는 불편함과 '시간'의 결합에서 오는 감성에 있다
이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생계와 부를 위한 자본, 나의 자유를 상징하는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불편함과 소중한 시간이 만나 전해지는 효용(레트로한 사진과 밀도높은 음악)은 감성이 된다. 이내 곧 추억이 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면 추억은 더욱 값지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아날로그 감성에 열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