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지만, 놀 시간이 널널했던 어렸을 적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무한도전을 챙겨보았다. 옛날의 무한도전 중에서, 정신과 의사가 멤버들을 진단하는 특집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재밌었던 특집이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정형돈이 한 말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를 연기하는 살리에르가 된 감정이다.'
어렸을 적과는 달리, 수험생이라는 경쟁 상황에 놓인 지금은 이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20살이 되기 전에 라틴어를 마스터하고, 당대의 철학자들과 토론한 밀부터 8살에 고등학교 미적분 과정을 끝낸 천재의 사례를 접하며, 일반고에서 겨우겨우 경쟁하고 있는 나는 모차르트가 되고 싶은 살리에르 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던 중, 문득 내가 느끼는 좌절감의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 끝에, 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정보화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위의 대목에서, 정보화와 좌절감 사이의 관계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 분들이 있을 것이다. 크게 관련없어 보이는 양자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정보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서양의 중세를 살펴보자. 서양의 중세는 개인의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장원제 사회였다. 즉, 개인이 태어난 작은 장원 하나가, 개인이 평생 접할 수 있는 사회였다.
이러한 좁고 한정된 장원이 여럿 존재했기에, 각 사회마다 모차르트가 나올 수 있었다. 즉, 개인이 경쟁해야 하는 범위는 장원이라는 한정된 구역으로 규정되었다. 사회가 여럿이었기에, 필연적으로 여러 모차르트가 나올 수 있었다.
반면, 현대 사회는 정보화에 의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을 그 시간에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사회의 범위가 장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구 전체로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통시적 비교의 범위가 그 당시 혹은 가까운 과거의 사람들에서 일만 년에 가까운 범위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면서, 1등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은 1등을 바라볼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흔히들 중세 시대의 60살 노인보다 현대의 5세 아이가 더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범위의 확장이 경쟁해야 할 상대의 증가와 이에 따른 좌절감의 확대로 나타남은 간과되고 있는 듯하다.
모차르트를 연기하는 살리에르조차 될 수 없는 나의 존재가 처량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