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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달다달리다 Feb 11. 2022

제주도 러닝 feat. 친구들과 뜀

Running ep3.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 해변 뜀박질 경험담입니다.

 이번 겨울 나는 대학 동기 셋과 제주도로 떠났다. 언택트 여행을 생각하며 우리들만 다닐 수 있는 코스로 계획했다. 사실 우리의 주된 목적은 끝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었으므로 유명한 핫플레이스가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우리는 한적한 자연과 숙소를 왔다 갔다 하며 편하게 쉬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제주도를 가면 기필코 아침에 러닝을 할테니 다들 협조를 해달라고 엄포를 놓았다. 체력이 좋으며 동시에 친절하기까지한 나의 친구들이 기꺼이 함께해주었다. 전날 소주에 딱새우회, 고등어회를 잔뜩 먹고 잠들었지만, 이들과 함께 뛸 생각에 7시에 눈이 떠졌다.  7시 초반에 일출이 있다고 해서 서둘렀다. 우리 가장 게으른 내가 가장 부지런한 SY보다 먼저 일어나서 씻었다는 사실에 SY는 꽤나 대견해했고, 우리의 정신적 지주인 SH가 마지막으로 씻고 결연한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섰는데, 겨울 제주도 온도인 영상의 따스함에 놀랐다. 그리고 아침의 상쾌함이 우리를 맞아주는 느낌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구름이 약간 낀 탓에 쨍하지 않은 아침 햇빛이 마음에 들었다. 이 구름 탓에 비록 일출을 보지 못하겠지만, 상관 없었다. 친구들과 뛰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우니까! 우리는 해변 둘레길을 따라서 뛰었다. 지난 밤에 4키로 정도를 뛰기로 합의하면서 정한 반환점까지 뛰는 것으로 말을 맞추고 러닝을 시작했다. 뛰는 내내 신나는 노래는 SY가 책임을 지고 틀어주었다. 예전에 함께 뛸 때면 무리 중 한명이 휴대폰으로 크게 노래를 틀어주는 게 우리만의 규칙이었다.(그 당시 우리는 무선 이어폰이 없었을 뿐더러 이어폰을 낄 생각도 못할 시기였다.) 

 우리는 거의 10년전의 학생 때로 돌아가 발맞춰 뛰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적당히 속도를 맞춰주며 뛰었다. 길이 좁아져 내가 제일 뒤로 가서 뛰었던 적이 있었는데, 하낫 둘 하낫 둘 발을 내딛어가는 내 벗들의 뒷모습을 보니 세상 든든하고 행복해졌다. 중간 중간 하늘이 너무 이쁘다, 옆에 끼고 달리는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는 등의 제주도 자연에 대한 찬사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숨소리만 듣거나 강하지 않은 바닷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달리기도 했다.  달리기 중간에 만난 동네 강아지가 왈왈 짖어대며 우리를 위협하긴 했지만, 나와 나의 친구들은 마냥 귀여워하며 지나쳤다. 

 하늘색 보라색 주황색이 적당히 섞인 하늘색과 짙은 남색만으로 보이면서 땅에 연하여서는 물이 한없이 투명해지는 바다색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검정 현무암으로 쌓아올려진 돌담들이 사뭇 정겨웠던 둘레길 코스였다. 반쯤 뛰었을까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 즈음에는 온 몸에 열이 오르고 상쾌해졌다. 누군가는 상쾌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몸이 옛날 같지 않다는 희멀건 농담을 내뱉으며 낄낄대었다. 계획했던 코스를 마치곤 약간 아쉬워져 해변으로 조금 더 뛰었다. 역시나 시커먼 돌로 이루어진 해변이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와있던 부녀가 바다 쪽에 더 가까이 가있었다. 진취적인 사진 작가였던 SH는 그들을 보면서 저기가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바닷물이 차오르지 않아 약간은 넓게 펼쳐져 있는 돌 해변을 가로질러 바다쪽으로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떠나는 딸에게 부탁한 사진은 퍽 잘나왔다. SY가 이곳은 새들의 똥이 꽤 많으니 빠르게 벗어나자는 의견을 냈고, 우리는 모두 와악 와악 소리를 지르며 다시 숙소로 뛰어 돌아갔다. 


 이들과 뛰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며 정말 많이 같이 뛰었다. 한바퀴를 돌면 5키로인 곳을 두번씩 돌면서 뛴적도 있다. 우리는 뛰면서 온갖 얘기를 다했다. 이래서 웃겼고, 이래서 슬펐고, 이래서 화났어. 라고 말하면 같이 들숨과 날숨을 헉헉 내쉬며 함께 웃어주고, 슬퍼해주고, 화내주었다. 우리는 같이 뛰며 항상 서로에게 응원과 사랑을 공유했다. 주로 저녁녘에 러닝을 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뛰고 나면 하루의 노곤함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이들과의 뜀이 이따금씩 간절할 때가 있었다. 힘든 일들을 겪고 조용히 집으로 혼자 걸어들어가던 저녁 밤, 그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었다. 그러다 이렇게 휴식의 여행에 함께 뛰는 시간이면 한없이 행복해 지는 것이다.


이번 겨울 제주도 러닝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함으로써 완벽해졌다.   

   

친구, 동기, 전우 등등의 단어로 부를 수 있는 애정 어린 사람들.


우리는 4년 동안 대학 시절을 함께 보냈다.

단순한 대학동기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같이 겪은 일들이 너무 많다.

같이 웃고, 행복해했던 시간들도 셀 수 없이 많았고,

같이 분노하고, 울었던 시간들은 그보다 조금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가끔씩 무리를 해서라도 만난 우리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많은 것들을 공유했던 우리는

지금의 고민 마저도 비슷하다.

그래서 밤이 깊도록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엄청나게 감사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인생은 즐겁다.

이들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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