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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달다달리다 Dec 29. 2021

중랑천 러닝 feat.영하4도러닝준비물

Running ep2. 영하 4도 중랑천을 뛰고 쓴 뜀박질 경험담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오랜만에 WK와 바쁜 일상을 털어내고 크리스마스-속초 여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몸 상태가 안좋아졌고, 내 모든 계획은 불가피하게 취소되었다. 완전한 휴식을 위해서 선택한 연말 계획은 넷플릭스와 피자였다. 따뜻한 방 안에서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으며 보내는 크리스마스도 행복했다. 어떤 곳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만 있다면 행복해지기는 어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산 귤이 굉장히 맛있는 귤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약했던 숙소가 설악산 바로 옆이었다. 서늘한 기운을 품은 설악산 둘레길을 가서 겨울 러닝을 하고 글로 남기고 싶은 소망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서울에 남겨져 있는 것, 방콕이라는 것. 게다가 크리스마스는 엄청나게 추웠다. 러닝은 고사하고 산책도 망설여지는 칼바람에 나는 집 안에서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는 것 조차도 포기했다.


그러다보니, 이브와 당일 2일 간을 열심히 먹고 찌웠다. 짠 음식을 먹고 바로 눕고, 겨우 앉기만 하다 다시 벌러덩 누워버리는 나날들에 나는 퉁퉁 부어버렸다.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월요일이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은 나가서 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치밀어 올랐다. 날씨를 확인해보니 영하 8도. 영하의 날씨에 뛰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추운날에 나가서 뛰어다니는 것은 항상 쉽지 않았었던 기억이 났다. 고민이 되었다. 점심이 지나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며 버텨보았다. 오후가 되었고 정말 날씨가 조금 풀렸다! 영하 4도. 그래 영하 8도 보다는 많이 따뜻해졌다.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 해가 지면 다시 추워질거란 생각에 서둘러 중랑천으로 나섰다.


중랑천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천이고, 중랑천의 물은 한강으로 흐른다. 뛰는 중간 중간 나오는 다리들은 어느정도 달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마일스톤같아 안정감을 준다. 러너들을 위한 길과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한 길이 명확이 나뉘어져 있어 조화롭게 자전거를 타거나 뛸 수 있어 긴장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장점들이 많많지만 자그마한 천을 따라 달리며 만나는 은은한 풍경들이 가장 맘에 든다. 이 곳에 이사오고 최-고 만족스러운 부분이 중랑천을 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집에 이사온 시기는 봄이었는데, 봄의 중랑천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일렁인다. 넓게 퍼진 유채꽃이며, 뛰는 사람들을 멈추게하는 그 멋진 장미들이며. 이런 중랑천을 끼고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들까지. 처음 뛰던 날 향기에 코가 징긋해지며, 마음이 간지러우며, 괜스레 나까지도 행복하지는 것 같은 멋진 러닝코스였다. 처음 중랑천을 발견한 이후로 부지런하게 이곳을 찾았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한결같이 만족스러운 러닝을 할 수 있었다.


겨울의 중랑천은 공기가 차갑다. 내 몸을 열심히 뛰게 해보겠다고 숨을 열심히 들이쉬고 내쉬는 탓에 자동차 연기처럼 입김이 만들어진다. 시국 탓에 마스크를 써 마스크 안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히고, 속눈썹에도 이슬이 맺힌다. 코는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코끝은 쉽게 차가워지고 빨개진다. 손과 발끝도 얼얼해진다. 그리고 몸통 전체를 감싸는 싸리한 기운의 추위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영하의 날씨에 중랑천을 뛰면서 나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따스한 온돌방에서 누워 느끼는 만족감과는 또 다른 종류의 기분이다.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슥 훑고 지나갈때면 왠지 모를 걱정이나 잡생각도 같이 가져가버리는 것 같다. 천 주변에 부는 바람은 왜인지 모르게 조금은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영하 4도이지만 다행히 피부를 뚫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민트가 주는 상쾌함과 비슷한 재질이다.


러닝을 할때는 주로 신나는 케이팝을 듣는 편이다. 요즘엔 에스파와 방탄소년단, 그리고 소녀시대가 리스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아이팟의 배터리가 나갔다. 0.5키로 정도 뛰었나했는데, 뚝- 하고 노래가 끊겨버렸다. 어쩔 수 없지. 아이팟을 주머니에 넣고 뛰기 시작했다. 오늘은 오래는 못뛰겠군. 생각하며 짧게 뛰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로 이화교를 찍고 돌아와 7키로 남짓을 뛰는데, 오늘은 5키로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이어폰을 빼니 주변이 고요했다. 천을 따라 도로가 있는 탓에 자동차 소리가 들렸지만, 약간 우중충한 공기압이 살포시 눌러 귀에 박히지 않고 잔잔하게 느껴졌다. 반쯤 얼은 천의 아래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중간 중간 있는 물가의 새들이 퍼덕거리며 날갯짓 하는 소리도 들렸다. 무엇보다. 나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내가 내쉬는 숨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모든 것들이 규칙적이면서도 약간은 불안정한 리듬의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들으며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WK가 갑자기 아팠을 때 무너지는듯한 마음을 느낀 순간, 열정을 쏟아 세웠던 계획들이 날라가버릴 때의 허탈한 감정.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며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파티 음식을 보면서 느꼈던 약간의 부러움. 크리스마스 연휴간 내 맘속에 덕지 덕지 자리잡고 있던 여러 생각, 감정들 특히 그다지 유쾌하지 않아 숨겨뒀던 것들을 다시 고요히 생각하며 뛸 수 있었다. 그리고 상쾌한 겨울의 공기를 들이쉬고 이런 잡다한 것들을 날숨에 내쉬어 내보냈다. 그리고 배터리가 나가버렸던 WK가 충전할 충분한 시간이 부족했구나싶어 그가 안쓰럽고 애틋해졌다. 집에 돌아가 아이팟을 충전하고. WK를 위한 요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상쾌한 뜀이었다. 러닝을 마치고 무릎과 발목을 돌리고 허리와 허벅지를 스트레칭했다. 종아리를 주무르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옷을 벗어 거는데, 중랑천에서 묻혀온 비릿한 겨울 바람의 냄새가 났다. 행복해졌다. 내일 다시 가야겠다.


겨울 러닝을 상쾌하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1. 비니 : 귀를 덮을 수 있는 비니가 필요하다. 아이팟을 고정해주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는 기능이 있다.


2. 장갑 : 나처럼 수족냉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장갑은 필수다. 뛰면서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장갑을 꼭 껴야한다. 러닝 중간에 노래를 바꾸고, 아름다운 주변을 찍는 사람이라면 스마트폰 터치 기능이 있는 장갑을 마련하면 좋다.


3. 나이키 에어로프트 패딩 : 내돈내산. 별거 없는 나는 광고 따윈 받지 못한다. 나이키 에어로프트 패딩은 단연코 겨울 러닝에 최고다. 가볍고 땀이 나면 바로 마른다. 안의 온도가 오르면 벗어 허리에 질끈 묶으면 된다. 얇고 부피가 적어 부담스럽지 않다. 주머니마다 작은 지퍼가 달려있어 휴대폰이나 아이팟을 넣고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4. 기모 레깅스 : 뛸 때는 레깅스를 좋아한다. 나의 튼튼한 다리 전체를 감싸고 지지해주어 뛸 때 내 다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겨울에 일반 레깅스를 신으면 약간 다리가 시리다. 나는 시린 느낌을 좋아해서 일반 레깅스를 좋아하지만, 기모 레깅스라는 엄청난 대안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되었다. 나에게도 영하 10도 이하에서는 아마 기모레깅스가 필수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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