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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달다달리다 Dec 29. 2021

주남 저수지 러닝

Running ep1. 창원 주남 저수지를 뛰고 쓴 뜀박질 경험담입니다.

오랜만에 진영에 내려왔다. 고향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은 창원 대산이지만, 지금 엄마와 아빠 모두 진영에 살고 있으니 내 고향은 진영을 포함한 창원이 되겠다. 그래도 가끔씩은 사람들에게 내 고향이 김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하여간에 약간은 난해한 문제이다.


 엄마와 아빠 집을 방문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부모님의 따뜻함 속에서 비로소 푹 쉬는 느낌이다. 그들에게는 항상 받기만하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이만큼 컸어도 이곳에 내려오기만 하면 으레 많은 것을 받아 마음이 풍족해진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약간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었는데, 그건 여기에는  뛸 곳이 마땅찮다는 것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잠깐 다녔던 헬스장 일일권을 끊어서 뛰어보기도 하고, 금병 공원을 가서 뛰어보기도 했는데 그다지 별로였다. 다시 가서 뛰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문득 주남저수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주남 저수지는 내가 나고 자란 시골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다. 나는 꽤나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면, 주남 저수지를 곧잘 찾곤 했다. 예를 들어 소풍이라던지, 첫사랑과의 추억을 쌓고 싶다던지, 잘해보고 싶은 남자와의 데이트를 위해서라던지, 수능이 끝나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던지 등등. 항상 옆에 있었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 귀중함이 약간은 옅어진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다 그곳의 둑방길이 환상적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로는 집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넓게 펼쳐진 논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달리는 1차선 도로가 퍽 마음에 들었다. 중간 중간 나오는 목장이라던지, 고구려 무예 연구소라던지 등등의 예상 못했던 장소들이 나타나는 것도 재밌었다. 그렇게 주남 저수지에 도착했다. 완벽한 주남저수지는 주차장에도 후하다. 넓은 주차장에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했다. 하늘이 맑았다. 정오 무렵이라 코 끝이 약간 시린 정도였지만, 햇살은 몸을 포근하게 품는 영상의 온도였다. 그렇게 러닝을 시작했다. 반환점 전까지는 왼쪽에 호수를 끼고 뛰었고, 돌아올 때는 오른쪽에 호수를 두고 뛰었다. 항상 내 눈이 호수를 향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호수에 미친 햇살이 만드는 물비늘, 윤슬이 너무너무 이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 나는 겨울임을 완연히 느끼게 하는 둑방길의 갈대들을 사랑한다. 갈대들의 실루엣과 바람이 불때 만드는 움직임은 너무 아름답다. 이들이 굳이 가을, 겨울에 나는 것은 얼굴에 닿는 차가운 기운과는 다른, 따스한 뉘앙스를 뿜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오랜만에 보는 철새 떼들도 반가웠다. 추운 겨울에 남쪽으로 날아온 철새들을 보면서, 방학을 핑계로 좀 쉬어보겠다며 엄마 품으로 찾아든 내 모습이 약간은 비슷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철새든 사람이든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곳을 찾아가야한다. 겨울을 버틸 수 있는 비빌 언덕은 어떤 생명체든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주남 저수지에 푹 빠져 정신없이 뛰다보니 8키로를 뛰었다. 특히 작은 섬같은 곳을 도는, 양쪽으로 나무가 운치있게 드리워진 데크를 뛸 때의 행복도는 최고조 였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러닝이었다. 최근 뛴 러닝 코스 중 단연 최고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배가 약간 아프고 종아리가 팽팽하게 부은 느낌이 있었지만,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얼굴을 발갛게 상기되었고, 내 마음도 만족감에 부풀었다.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물과 함께 엄마가 싸준 김밥을 한 줄 먹었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노래를 불렀다. 마음에 담겨있던 무거운 것들을 한아름 내려놓은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다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가며, 내일 아침에도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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