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에 대한 단상
"경영 위기로 맡고 계신 포지션이 사라집니다. 안타깝지만, 이번 구조조정 대상자예요."
역대급 불황이 도시를 흔들었다. 경쟁사 세 곳이 네 달 만에 파산했고, 회사는 쓰나미처럼 사람들을 쓸어냈다. 누군가의 자리가 조용히 사라지는 건, 그 누군가가 내가 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1년 동안 입사한 세 개의 회사가 모두 무너져 세 번이나 내쳐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허탈과 혼돈이 내 안에서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마지막 퇴사 이후 두 달은 거의 누워만 있었다. '청년백수가 백만 명이라던데, 한 명 더했구나'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난 또다시 정처 없이 길에 서 있구나. 내면의 목소리가 흐릿할수록, 사방의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온다. 긴지 짧은지 곧은지 굽은 길인지도 모른 채 사방에서 들리는 ‘여기가 맞아’ 소리에 이곳 들리고, 저곳 기웃대고 있다. 막상 도착한 자리는 늘 낯설다. 잠시 머물다 돌아서면 또 얼마큼 남은지도 모르는 길을 휘청대며 걷고 있는 기분이다. 이대로면 팔순에도 커리어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무기력감 끝엔 질투만이 선명해졌다. 질투는 모니터 속 자신의 길을 묵직이 걷고 있는 사람들로 향했다. 전공도 아닌 학문을 다른 언어로 낯선 땅에서 배우며 동시에 기록을 이어가는 사람, 콘텐츠를 만들고, 취업 컨설팅을 병행하며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 CEO 이자 작가이자 컨설턴트로 살아가는 사람. 히스토리가 있는 사람들.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매일 몸을 단련하며, 언제나 매끈하게 단정하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살아낼 수 있는가. 그들의 무자비한 성실 앞에서 나는 늘 작아진다. 반짝이고 부지런한 그들의 시간만이 청춘 같았다. 붙잡으려 할수록 빠르게 사라지는 나의 시간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들이 미치도록 부럽다. 동시에, 다들 적당히 좀 살기를 바라는 못된 마음도 든다. 그래야 내 버석한 자학이 조금 가라앉을 테니까.
그러다 문득, 나의 열심을 묻는다. 무엇을 어떻게 열심히 하고 싶은가. 무엇을 열심히 해왔는가.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삶에서 아직 무언가를 ‘열심히‘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에서 오래 머무는 내가 두렵다. 혹여 이 미적지근함이 영원히 이어질까 봐.
그래서 나는 쓴다. 읽고, 다시 쓰고, 또 쓴다.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열심은 그것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서 피어나는 불안은, 결국 ‘무언가 해냄’으로써만 잠재워진다는 믿음을 동아줄처럼 붙든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작은 열심이 나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나는 믿는다. 두 번 내쳐짐에도 세 번째 다시 회사에 들어간 나를 다시 믿는다. 밀려날지라도 또다시 걸어 나설 수 있는 나를, 언젠가 이 방황과 미적지근함마저도 나의 히스토리를 이룬 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