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식

짱구 과자와 상실

by April
벌써 1년

작년 7월 한창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중, 휴대전화 알림이 거슬리게 울렸다. ‘이번 주말에 집에 좀 와’ 언니였다. 최근 아빠의 건강이 좋지 않아 검진을 받았고 결과는··· 폐암 4기, 남은 시간은 반년 남짓. 화장실 한 구석에 숨 죽인 채 앉아 있던 나는 오랜 시간 자리를 떠나지 못 했다.


나에게 아빠는 <폭싹 속았수다>의 일명 ‘학씨 아저씨’에 가까웠다. 그는 툭하면 가정에서 군림하려고 윽박지르는 전형적인 가부장 캐릭터. 자주 상처받은 탓에 딸은 끝끝내 살가운 자식은 되지 못했다. 아빠가 계속 기침을 했던 것도, 무섭게 살이 빠지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다행히 항암은 시도할 수 있었지만, 큰 비용 때문에 아빠는 치료를 거부했다. 아빠의 안부를 묻지 않은 숱한 시간은 묵직한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잘못되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이기적으로 선택하지 마라.” 가시 돋친 말을 해댔다. 더 예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며칠을 옥신각신한 끝에 치료를 시작했다. 사는 내내 호랑이 같던 아빠는 병원에선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 같았다. 불안하고 겁에 질려 보였다. 기어코 안 와도 된다더니 막상 가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사이 항암으로 빠진 머리 곳곳엔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아무리 속상해도 따뜻한 말 한 마디 하기가 도대체 어려운 딸은 그가 좋아하던 복숭아에 말 못 한 다정을 조각내 담아 갔다.


마지막 항암 날, 아빠는 짱구 과자가 드시고 싶다고 했다. 무언가를 사 달라는 얘기를 안 해서 기쁜 마음으로 네 봉지 사 갔고, 아빠는 순식간에 두 봉지를 해치웠다. 그새 친해진 다른 환자에게도 딸이 사준 거라며 나누어 주었다. 두 달에 걸친 네 차례의 항암은 성공적이었다. 왼쪽 폐를 뒤덮은 종양의 크기가 작아졌고, 건강 상태도 양호했다. 우리는 안도하며 기분 좋게 퇴원했다. 그러나 불행은 희망으로 사람을 들뜨게 하고는, 더 깊게 곤두박질치게 한다. 이틀 뒤, 아빠는 응급실에 실려 갔다. 무섭게 부풀어 오른 몸과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급성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폐 기능과 면역력이 떨어진 육신이 버텨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항암이 끝나고 사흘 뒤, 아빠는 그렇게 영원히 눈을 감았다.


항암 줄을 연결한 채 짱구 과자를 드시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 선하다. 나는 한동안 마트에서도, 편의점에서도 과자 코너를 가지 못했다. 왜 하필 아픈 사람에게 네 봉지나 사 갔을까. 봉안당과 산소에 왜 상할 음식을 두는지 막연히 궁금했다. 그건 남은 이들이 떠난 이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아빠가 떠난 후 첫 명절, 유골함 근처에 짱구 과자를 두었다. 더 이상의 형체가 없어진 아빠의 흔적은 거기에 묻어 있다. 이제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식이자, 아빠와 내가 여전히 서로를 기억하게 해주는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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