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결국 연결되어

비극을 견디는 방법

by April

"막내딸, 결혼식장 들어가는 건 보고 죽어야 되는데."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빠는 작년 10월, 암 투병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폐암 선고 후 불과 세 달 만이었다. 항암이 효과를 보이면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되찾던 얼굴이 아직 선하다. 매일 달리기를 하고, 식단을 챙겨 드시는 그가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보았다. 치료 경과나 좋지 말지. 패혈증으로 몸이 부풀어 오르던 그 시간, 아빠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틀 전까지 통화한 사람이 이제 없다는 건, 멀쩡한 집이 무너진 것 같다. 평소 가던 길 한가운데서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얼얼하다. 상실은 여전히 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일상을 쉽게 불안에 잠식시킨다. 부재가 남긴 공백 위에 또 다른 삶이 쌓이고, 그 무게를 견디며 살아내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이다.


그 해 겨울, 뉴스에서 비극이 들려왔다. 아빠의 죽음으로 깨달은 점이 있더면 누군가를 잃는 순간, 삶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다른 이의 고통과도 이어진다는 것. 그래서 낯선 타인의 아픔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극은 늘 한 끗 차이로 우리 곁에 있었다. 유가족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를 낸다. 재난의 반복을 막기 위해, 고통스러운 아픔을 끊어내기 위해. 그들의 용기 덕에 피로 쓰인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산다.


“우리가 편안하고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우리 삶이 평화로워질 순 없는 거예요. 우리 삶에 다른 사람들의 삶도, 현재와 과거도 다 들어와 있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응시하는 것이고 우리 삶의 일과로서 같이 가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님의 인터뷰다. 개인의 상실도, 사회적 참사도 결국 남은 이들의 삶을 흔든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 일상을 살아가되, 삶의 한 켠에 12월 29일의 겨울과 4월 16일의 봄, 그리고 비극의 날들을 남겨 두어야 하는 이유다.


나 역시 상실의 무게를 홀로 견딘 건 아니었다. 작년 내 삶은 드라마 속 애순의 부엌 같았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그녀의 부엌에 이웃들이 가져온 전복과 야채, 고기가 쌓였듯, 내 곁에도 수북한 다정들이 쌓였다. 먼 거리를 울면서 찾아온 친구, 쌍화탕을 들고 온 전 팀장님, 대신 연락을 돌려준 친구, 장례 내내 묵묵히 함께한 친척들, 그리고 내 옆을 지켜준 연인까지. 아빠는 생전에 늘 외로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길만큼은 수많은 손길 속에서 떠났다. 여전히 내 안부를 살피는 지인들의 배려는 영영 아물지 않을 상처 위에 연고처럼 스며든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다정은 한 사람을 또 살게 했다.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살렸듯, 언젠가 내 손길도 또 다른 상실을 건너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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