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부산, 광안 앞바다에 있다. 정갈한 화이트톤의 숙소 안, 네모난 프레임으로 광안 대교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과 바다를 내내 바라보는 일, 그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이야말로 축복같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은 시대에 태어났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우리는 어디든 떠날 수 있다. 때론 돈이 없어도, 편도 비행기값만 모아 훌쩍 떠나 버리는 사람도 있다. 떠남은 선택의 자유처럼 보인다.
어제 부산 터미널에 내려 지하철을 탔다. ‘부산 지하철은 들어올 때 파도랑 뱃고동 소리가 나네’하는 순간, 귓가에 부산말이 가득 들어온다. 화난듯 정겨운 듯한 억양이 노래처럼 들린다. 괜히 그곳에서 서울말을 하기 멋쩍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여행와 같이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지만.
밤이 내려 앉은 바다 앞길로 걸어본다.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서니 문득 길의 끝이 두려웠다. 바로 옆은 방파제, 그리고 검은 바다, 누군가 등을 떠밀면 그대로 삼켜질 것 같은. 방파제는 시신도 못 찾는다는데, 발견도 못 되면 어쩌지. 멀리 불꽃놀이가 한창인 낭만적인 요트 떼를 보며 하기엔 꽤나 괴이한 상상이었다. 집 앞을 산책한다면 이른 시간이었지만, 얼른 숙소로 돌아왔다.
문득 서울로 상경한 친구들이 한 말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나는 영원히 이방인 같다."고. 그들의 시간에 비하면 나는 무척 짧았지만, 어렴풋이 알았다. 내 것이 아닌 억양, 떠나온 곳, 처음 밟는 길의 낯섦, 불쑥 찾아오는 두려움, 부산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낯설다는 건 동시에, 내가 있던 자리와 돌아갈 곳이 분명히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떠나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가 삶을 지탱한다는 걸, 이 낯선 도시의 바다 앞에서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