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분 20초/ 1km, 나도 러너라고 해도 될까요.

by April
output%EF%BC%BF2146255236.jpg?type=w966

9분 20초/1km

내 평균 러닝 페이스다. 잘 뛰어야 8분대 후반. 마음은 우사인볼트인데 이 속도도 목에 피맛이 난다. 다리는 온 우주의 중력이 달라붙은 듯 무겁다. 폐는 숨 가쁘게 벌떡 벌떡, 심장은 적당히 하라는 듯 쿵쾅쿵쾅. 늘 여유만 부리던 주인의 갑작스러운 템포에 장기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주인 왜 저러냐고 아우성치는 듯하다.

그런데 sns 속 지인들은 6분대 페이스로 5km 이상씩 달리며 나이키 로고를 자랑스럽게 박아 올린다. 그게 왜 그렇게 멋져 보였는지. 한때 버킷리스트였던 페이스 인증은 연인 외에 공유한 적은 없다.

내 별명은 오래도록 할머니였다. 늘 방전돼 보이고, 건강이 걱정되는 사람. 러닝을 한다고 하면, 반응은 한결같다. “헉 너가?” 할머니가 러닝을 한다는데 놀라는게 당연하겠지.

처음 달릴 때는, 3분짜리 노래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주저앉았다. 그마저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좀비처럼 휘청거렸다. 그렇게 포기할 뻔 했다. “원래 체력이 약한 사람이니까. 운동을 못 하니까.” 스스로 던진 핑계들이 에어팟을 뚫고, 노래 대신 귓가에 날아들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조금씩 느렸다. 재수를 했고, 휴학도 했고, 취업도 늦어졌다. 천성이 느긋한 탓에 행동도 느린 편이다. 붐비는 점심 시간 카페, 손이 느린 알바생은 늘 눈치밥이었다. 느린 건 내 업보 같았다.

그런데 러닝은, 느리고 멈춰있는 나를 나아가게 한다. 노래 한 곡에서, 두 곡, 세 곡 그리고 이제는 몇 곡째인지 굳이 세지 않는다. 3분에서 6분, 6분에서 9분. 느리지만 분명히 늘어난 시간. 땅 끝같던 피니시 라인에 마침내 도달했을 때의 희열을 기억한다. 속도는 전부가 아니다.

아직도 2km 이상은 버겁고, 페이스는 여전히 9분대다. 하지만 안다. 내 러닝은 주어진 숙제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임을. 느려도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에어팟 끼고, Fun의 <we are young>을 틀고, 나이키 앱을 켠다. 기지개 한번 쭉 켜고, 마음 속으로 외친다. 셋,둘,하나-

나는 오늘도 달린다. 느리게, 분명히 나아가는 러너로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떠나옴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