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_ 사실 지금까지는 소꿉장난이었습니다.

K-장녀의 자질이 -30점 되었습니다.

by 도링기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이 둘의 결혼 이야기에 뭐 하나가 빠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 특히 부모님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 많은 것을 논의할 때까지 양가 부모님에게 서로의 존재를 감추고 있었다. K-장녀와 K-장남이면서 이렇게도 부모에게 말을 아끼다니. 우리는 어쩌면 장자의 자격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남자 친구는 둘 다 대학교 때부터 나와 살았고 '우리'의 결혼식이라고 생각해 예식장, 집, 스드메를 꾸려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다. 부모님의 동의가 없이는 더 진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21세기라고 해도 통상적으로 결혼식은 둘 만의 잔치가 아닌 가족의 잔치 자리가 된다. 부모님의 허락이 필수요소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양가 어른을 찾아뵙고 결혼에 대해 의견을 묻는 과정이 일반적으로 발생한다. 나와 남자 친구는 둘 다 평범한 대한민국 직장인으로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식을 추구했고, 이는 부모님과의 소통 과정도 결혼 준비에 포함시킨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쩌면 부모님 몰래 웨딩홀을 예약했다는 점에서 이미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슬슬 각자의 부모님에게 우리의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밝힐 때가 찾아왔다고 판단했다.


무릇 이처럼 큰 커뮤니케이션에는 전략이 필요한 법. 다짜고짜 아부지, 나 내년 6월에 결혼할랑게 날짜 좀 비워두쇼,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의 기본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STEP 1: 만나는 사람이 있으며 내년 즈음에 하고 싶은데 부모님 의견은 어떠신지요?

STEP 2-1: (별 의견이 없을 경우) 이러이러하게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STEP 2-2: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 알아보니 그건 힘들고 이게 된다고 합니다. (라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STEP 2-3: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 알아보니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STEP 3: 해피 결혼 꺄호홋!

이 전략의 핵심은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유지하되 우리가 계획했던 것을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었다. 적고 보니 조금 통수치는 느낌의 전략이긴 하지만, 최대한 스무스한 결혼 준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달까. 쏘리,


아무튼 우리 결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나와 남자 친구는 각자 집으로 가서 비둘기처럼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본가에 내려가고, 다음 주에 남자 친구가 본가에 내려가 일주일 간격으로 각 가정에 속보를 발행하기는 것으로 합의했다. 구구. 인간 전서구가 되어 고향으로 날아가는 나, 과연 평화의 상징 비둘기처럼 평화를 쟁취할 수 있을까. 동시에 그의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 의문점만 품은 채로 기차에 올라 고향으로 향했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전략은 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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