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답잖은 건 곧잘 말하면서 중요한 건 말을 아끼는, 조금은 의뭉스러운 스타일이다. 이 화법은 가족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취업한 이후 어떠한 남자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굳이 말을 해서 필요 없는 의문과 걱정을 끼치기 싫기 때문이고 솔직히 말하면 귀찮기 때문이었다. 남자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몇 살이냐, 뭐 하는 사람이냐 라는 클래식한 신상 조사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은 뭐하시고 술은 마시는지, 담배는 피우는지 등의 세부 조사까지 순식간에 진행될 것이 뻔했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소파에 누워 과일을 씹으며 하-나도 없다고, 엄마 아빠가 어디 가서 사람 좀 알아오라고 너스레를 떨기만 했다.
그래서 남자 친구의 공개와 결혼 의사까지 한꺼번에 밝혀야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할지 걱정되면서도 내심 좋아하지 않을까, 예상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반응을 점치기란 쉽지 않았다. 지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법. 대면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부모님께는 별다른 말 없이 7월 중순에 집에 한 번 내려가겠다고 전했다. 엄마는 원체 본가에 잘 오지 않는 딸이 무슨 바람이 불어 내려오는 건지 궁금해했지만, 일단 온다고 하니 수박도 준비하고 나의 최애 된장찌개도 준비하며 딸내미 먹이기 프로젝트에 돌입하셨다. 카톡으로 전송되는 과일과 집밥 사진을 보며 묘하게 양심이 찔렸다. 쏘리 마미, 벗 알러뷰.
언제 먹어도 맛있는 집밥.
집에 도착해 먹고 자고 빈둥거리는 척을 하며 토크 타이밍을 노렸다. 하필 아빠가 초저녁부터 주무셔서 영 적절한 때를 찾을 수 없었다. 나의 고향 방문 일정은 일박 이 일이었다. 가급적 첫날 모든 이야기를 전하고 부모님께 마음의 짐을 넘기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아빠가 이대로 다음 날 아침까지 자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차오르던 밤 열 한 시, 아빠가 일어나 야식을 먹기 시작했다. 기회였다. 아빠가 수저를 내려놓는 순간, 나는 긴급히 외쳤다.
"엄마, 아빠, 여기 앉아봐. 나 할 말이 있어."
얼굴로 물음표를 그리며 부모님은 거실에 앉았다. 나는 소파에, 엄마와 아빠는 바닥에 앉은 모양새가 영 반유교적이라 신경 쓰였지만 자세를 바꿀 여유는 없었다. 수영선수가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후딱 본론부터 질렀다.
"나 내년에 결혼할까 봐."
아빠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날 놀리나, 하는 표정이었다. 네가 남자가 있어야 결혼을 할 거 아니냐 라는 느낌의 부정적인 눈초리가 감지되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나 남자 친구 있어. 그 사람이랑 내년에 결혼할까 하는데 엄마 아빠는 어때?"
"... 남자 친구가 있어?"
마치 산타클로스가 있냐는 듯한 물음이었다. 네 아버지, 산타클로스 아니 남자 친구는 존재한답니다. 엄마에게는 한 달 전 즈음에 남자 친구의 존재를 따로 밝혔던 터라, 엄마는 적당히 놀란 눈치였지만 아빠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몇 살인데?"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답게 아빠는 그의 나이부터 물어보았다. 나이 다음에는 직업, 고향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아주 전형적이었다. 얼마나 만났냐는 물음에 일 년 반 정도 만났다고 대답했다. 까닭을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 삼 년이라고 했어야 했나?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입을 떼었다.
"그 사람이 왜 좋니? 뭐가 좋아서 결혼까지 하고 싶어?"
그러게 말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영화까지 만들어졌고 결혼을 결심하는 커뮤니티 질문 글에는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댓글이 밈을 이루는 요즈음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사람과 결혼이 하고 싶은 걸까. 현실적인 문제 - 바퀴벌레를 잡아주고 밤 열 한시에 치킨을 같이 먹어줄 사람의 필요, 둘의 월급을 합쳐 서울에 내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싶은 금융적 접근 - 를 잘못 얘기했다간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올게 뻔했다.
"사람이 한결같고 다정해서 좋아."
나의 감성적인 답변에 엄마가 만족할 줄 알았지만 부모님의 얼굴은 더 어두워지기만 했다. 이게 아닌가? 마치 취준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내 딴에는 준비한 대답인데 면접관들은 대부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었지. 비록 내가 소파에 앉아있고 부모님은 바닥에 앉아있었지만 우리의 실질적인 위치는 내가 을이요 부모님이 갑 같았다.
"결혼을 하면 정말 여러 가지가 힘들어. 결혼도 보통일이 아니지만, 이혼은 진짜 힘들거든. 웬만한 마음으로는 결혼을 해서는 안돼."
엄마의 말은 사실상 하지 말라는 의미 같았다. 뭐지? 나의 결혼을 바라는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왜 옆집 딸내미와 고교 동창의 결혼 소식을 자꾸 전한 거지? 왜 남자 친구의 유무를 물어본 거야?
"엄마 말이 맞다. 너, 결혼하면 진짜 생각보다 더 힘들다.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다고."
엄마의 말을 이어 아빠도 은은한 걱정을 내비쳤다. 당황했다. 내 시나리오에 없던 전개가 펼쳐졌다. 부모님은 나에게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이 사람'과의 결혼을 설득하는 게 주된 업무라 생각했는데 '결혼'을 설득해야 할 줄은 몰랐다.
"왜, 나 결혼하지 마? 분위기 왜 이러지? 엄마 아빠가 한 번 해보니까 영 아니야?"
"아니 누가 그렇대, 그냥 너 결혼해서 고생할까 봐 그렇지. 요즘 세상에 결혼이 뭐 중요하다고."
"엄마는 그런 거 치고 자꾸 친구 딸내미 소식을 전하던데… 엄마, 축의금 낸 거 회수해야지. 안 그래?"
나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엄마는 못 말린다는 얼굴로 쳐다보았고 아빠는 혼자 심각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 계속 고민을 했다. 짙은 이마와 미간의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뭘 저렇게 고민하시는 걸까.
하긴, 엄마 아빠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어쩌면 이와 같은 소식에 단박에 쌍수 들고 환영할 부모님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라도 딸자식이 몇 년 동안 남자 얘기 없다가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면 당황스럽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일단 밥이나 한 끼 같이 하자며 다음 달에 남자 친구와 함께 내려오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럽다고 손사래 쳤지만 걱정보다 호기심이 컸던 모양인지 일정을 잡고 알려달라고 하셨다.
다음 날. 서울로 돌아가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부모님은 기차 플랫폼까지 따라 나왔다. 금방 내려온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우리 딸이 벌써 엄마 품을 떠날 생각을 하니까, 괜히 기분이 이상하네…." "엄마, 벌써 이걸로 울어? 이러다가 결혼식장에서는 오열하겠어."
엄마는 울다가 웃어버리며 어서 조심히 올라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빠도 무뚝뚝한 얼굴로 손을 휘휘 흔드며 전화하라고 말했다. 애써 웃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지만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도 울어버렸다. 자식의 결혼, 특히 딸의 결혼은 독립이 아닌 이별처럼 느껴지는 걸까? 난 진작에 독립을 했는데 결혼을 하면 더 멀어지는 게 되는 걸까? 엄마의 눈물 한 방울은 나에게 큰 파도처럼 다가왔고 애써 가라앉은 마음은 요동쳐서 수많은 생각이 부유물처럼 둥둥 가슴속에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