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뜬금없는 결혼 소식에 중간 정도의 레벨로 난리가 났던 우리 집과는 달리 남자 친구네는 평온하게 지나갔다고 했다. 내년에 결혼하겠다는 그의 말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며 본인은 사실상 결혼을 허락받았다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냐, 서울에서 결혼하는 건 괜찮냐고 하셨냐, 내 얼굴도 안 보시고 결혼 콜 하신 거냐. 얼추 다 그렇다는 그의 말이 못 미더웠지만 일단 알겠노라고 답했다. 그 후로도 다시 한번 확인하라며 마치 1년 차 사원에게 업무를 맡긴 윗사람처럼 지속적으로 리마인드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쿨해도 너무 쿨했다.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속도인가 싶었다. 혹시 남자 친구네 부모님이 부정적인 말씀을 하셔서 나에게 전달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참지 않는 성격에 생각을 그대로 질문으로 옮겼고, 남자 친구는 정말 그런 게 아니라며 확고하게 얘기해주었다. 사랑과 전쟁, 연애의 참견, 에로 부부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한 번 고난이 찾아와야 하는데. 현실은 드라마와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양가 인사였다. 하나가 아닌 둘이 내려가 처음으로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 남자 친구네 집보다는 나의 결혼에 회의적인 우리 집으로 같이 내려가 인사를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8월 초 주말로 우리 집 방문 일정을 결정했다. 부모님께 날짜를 컨펌받고 첫인사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차표를 예약했고 그는 선물과 입고 갈 옷을 골랐다. 남자 친구는 다양한 품목 사이에서 고민했다. 고기에서 과일, 버섯 등 생물류를 살펴보다가 보관 기간이 길고 좀 더 무난한 도라지 및 홍삼정과 세트로 정했다.
역시 21세기 정보화 시대는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읽어내어 기깔나게 알맞은 제품을 안내해주었다. 누가 봐도 첫인사나 상견례용으로 적합한 제품이 있었다. 이름부터 엄청났다. 무려 [궁중비법]. 만 원을 추가하면 고-오급진 보자기 포장까지 가능했다. 잘은 모르지만 궁중스러운 느낌이 물씬 났다. 여기에 엄마의 마음을 뒤흔들 꽃다발까지 준비했다. 아주 전형적이었다. 메인 선물과 어머님 여심 저격용 꽃다발. 향기로운 파스텔 톤의 꽃들에게 조용히 내 마음을 건넸다. 얘들아, 너희들이 우리 엄마 마음을 좀 흔들어다오.
적당한 구성과 적당한 가격, 여기에 폼나는 포장까지. 정확히 우리가 찾는 구성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기차역에서 남자 친구와 기차에 올라탔다. 매일 혼자서 타던 기차를 누군가와 함께 타니 기분이 묘했다. 옆자리에 앉아 서로의 건투를 빌었다. 잘 인사하고 좋은 인상 남겨서 로드 투 결혼에 박차를 가해보자. 안 그래도 빠른 기차인데 기분 탓인지 순식간에 서울에서 고향으로 이동했다. 기차에서 내려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차역 한 켠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엄마, 아빠의 실루엣이 보였다. 흘깃 남자 친구를 쳐다보았다. 남자 친구의 승모근이 한층 더 굳어보였다. 짜식, 긴장했구만. 여유로운 척했지만 나 또한 안면 근육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카페에 들어가니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머, 어서 와요. 오느라 수고했네요.”
아니, 저 목소리는… ? 엄마가 어색하고 우아한 척할 때 내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세상 어색한 존댓말까지. 벌써부터 오늘 하루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