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찾기에 큰 수확이 없어 실망하던 것도 잠시, 정신 차려보니 남자 친구네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 다가왔다. 우리 집에 내려간 게 8월이었는데 추석과 코로나로 인해 그의 집에는 10월에 내려가게 되었다. 남자 친구 역시 지방 출신이라 그의 집에 가기 위해서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야 했다. 편도 세 시간에서 세 시간 반의 거리. 그리고 그보다 더 먼 마음의 거리를 안고 그의 고향으로 향했다.
모든 첫 만남은 대부분 어색하지만 그래도 유난히 어색한 첫 만남이 있다. 본디 어색하고 어려운 자리일수록 사전에 준비를 하게 된다. 나 또한 물질적 준비를 갖추었다. 우리 집에 인사드리러 갈 때 기억이 좋았던 궁중뭐시기 다과 세트, 어머니를 위한 어여쁜 꽃다발, 여기에 약주를 좋아하신다는 아버지를 위해 백화점에서 전통주까지 준비했다. 예비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하니 매장의 점원 두 분이 합세해 같이 술을 골라주었다. 이처럼 시댁과의 첫 만남은 모르는 사람도 하나 되게 만드는 자리인가 보다.
파스텔 톤으로 준비해보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겸사겸사 새 옷도 구매했다. 옷장을 둘러보니 입고 갈게 없어 보였다. 살짝 투머치인가 싶었지만 매장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참 예뻐서 그냥 사기로 결정했다. 오빠네 인사드리려고 새 옷을 샀다는 나의 말에 남자 친구는 의문을 표하는 얼굴이었지만 못 본 척했다. 모든 쇼핑에는 명분이 필요한 법이다.
최종 후보 2종. 아무튼 사도 사도 옷장에는 옷이 없는 법이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그의 고향에 도착했다. 터미널 밖으로 나가니 그의 부모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사진 속에서만 뵌 분들을 실제로 만나니 신기하고 어색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차 안에서 문득 지난번 부모님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얼마나 남자 친구가 낯설었을지 이해가 갔다.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는 덕담만 오고 가는데도 어색함에 뚝딱거렸다. 나는 파워 E형인데.
그렇게 중식당으로 이동해 식사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요리가 서빙되기 전에 준비한 선물을 얼른 건네드렸다. 보자기로 포장된 다과 선물과 예쁜 꽃, 그리고 고급스러운 술 선물을 차례로 드렸는데 아버님은 술에, 어머님은 꽃에 좋은 인상을 받은 눈치였다. 역시 양가 어머님 선물로는 꽃이 최고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어머님이 꽃이 참 예쁘다며 꽃병에 꽃을 보관하셨다고 했다. 각종 신기술이 판을 치는 21세기여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 여전히 꽃만 한 게 없나 보다.
선물을 건네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마스크를 벗은 부모님들 얼굴을 뵈니, 확실히 오빠는 아버님을 닮았다. 그의 미래를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자니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몇십 년 뒤의 오빠는 이렇게 생겼겠구나. 이것이 유전자의 힘인가 싶었다. 우리 집은 엄마가 사교성이 좋은데 오빠 집은 아버님이 말주변이 좋으셨다. 오는데 불편함은 없었는지, 사진은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실물이 더 예쁘다는 등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역시 새 옷이 효과가 있던 걸까. 이렇게 쇼핑에 명분이 더해졌다.
코스별로 요리가 나오는데 배고픈지도 모르겠고 대충 입에 조금씩 넣었다. 조신하게 먹고 싶었다. 고픈 배를 채우기보다는 잘 보이고 싶었다. 남자 친구 부모님은 이 지역에서 쭉 살고 계신 토박이라, 중식당 사장님도 친구라고 하셨다. 그래서 종업원이 서빙해주지 않고 자꾸 사장님 내외가 번갈아가며 우리 식탁으로 음식을 나르며 나의 얼굴을 슬며시 쳐다보셨다. 부담스럽기보다는 아무튼 잘 보이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며느리의 마음인 것인가. 처음 보는 자리부터 기깔나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남자 친구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새삼 지난번 우리 집에 인사를 갔을 때 더 잘해줄걸, 하고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