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_화려한 드라마보다 밋밋한 현실이 낫다

드라마와 달라서 다행이야.

by 도링기

“그래, 이제 가깝게 지낼 거니 말 편하게 할게.”


아버님은 웃으며 말을 놓겠다며 선언하셨다. 나 역시 편하게 말씀하시라고 말을 보탰다. 이어서 아버님은 우리가 가족이 되어도 일 년에 몇 번이나 보겠냐고, 자주 못 봐도 한 번씩 볼 때마다 재미있게 지내자고 덕담을 건네주셨다. 잘 먹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긴장을 풀고 많이 먹으라는 말씀도 함께.


“보통 이런 식사 자리는 한식을 먹지만 지난번에 우리 아들이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중국 요리로 준비해봤는데, 입에 맞을런지 모르겠네. 여기가 그래도 동네 맛집이니 맛있게 먹어요.”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자리가 면접이라고 생각했다. 오빠네 부모님은 나를 만나기도 전부터 결혼을 승낙하셨다고 했다.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어떻게 예비 며느리 얼굴을 보지도 않고 콜을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마치 화투짝을 보지 않고 판돈을 거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오빠가 믿음직스러워도 유교 국가 대한민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기에 함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대다수의 현실은 드라마보다 밋밋한 법. 우리 아들을 쉬이 넘겨줄 수 없다는 브라운관의 시댁을 보다가 이처럼 두 팔 벌려 웰컴 투 패밀리를 외쳐주는 아버님을 뵈니 마음이 편해졌다. 예쁘고 불편한 옷을 입었지만 마음은 편해졌고 맛있는 중국 요리를 야무지게 먹었다. 마음이 놓이니 나도 모르게 장군감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버님은 그런 나를 보며 웃음이 환해서 보기 좋다고 덕담을 해주셨다.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자존감 되찾기 캠프에 온 기분이었다.


예비 시부모님이 할지도 모르는 다양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준비했지만, 내가 받은 질문은 가족 관계 정도였다. 결혼 준비는 나와 남자 친구가 편한 대로 준비하라고 하셨다.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던데?” 라던 오빠의 말이 정말로 맞았던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아주 야무지게 드잡이를 하려고 다짐했었는데, 다행히 드잡이 기회는 날아가버렸다. 평균적인 집안 분위기보다는 다소 자유로운지 마치 미국처럼 결혼 준비는 (아직은) 양가의 의견 없이 우리끼리 진행하게 되었다. 분명 이쯤 되면 어른들의 한 마디가 나오고 우리의 순탄한 결혼 준비에 한 번쯤 잡음이 생길 법도 한데. 불안한 순풍이 계속 불고 있었다.


그렇게 식사 자리가 끝나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한 잔 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고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와 함께. 남자 친구는 하루 더 머물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부모님은 내가 성격이 좋아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고 하셨다. 얌전한 남자 친구와 다르게 나는 아주 밝아 보여 둘이 잘 어울린다는 덕담도 남기셨다고. 역시 연륜은 무시 못하는 법이다. 얌전한 척하려고 했지만 나를 꿰뚫어 보신 듯했다. 선물로 드린 꽃은 화병에 꽂고 술은 다음번에 좋은 자리에 드시겠다며 아껴둔다는 말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렇게 마라맛보다는 우유맛 같은 평온한 첫인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래, 사랑과 전쟁은 보는 것으로 족하지, 찍을 필요는 없는 법. 평탄한 현실에 감사하며 결혼을 위한 다음 준비를 계속해나갔다.

KakaoTalk_20220213_215604107.jpg 어쩌면 맑은 하늘은 그날의 예고편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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