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_소비는 나의 힘

나의 재능은 돈쓰기였다.

by 도링기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결혼 준비는 재미없었다. 결정해야 하는 것은 많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체크리스트의 상당 부분은 흥미롭지 않았고 다행히 우리 둘은 크게 까다롭지 않아 빠르게 의견을 일치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도 붕어빵에 기뻐하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결혼 준비에도 재미는 있었다. 바로 돈 쓰는 재미였다.


평소 같으면 고민할 사안이 결혼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관대해졌다. 마법 같은 수식어, ‘인생에 한 번’이라는 말만 붙으면 무엇이든 허용이 되었다. 그래, (아직은) 인생에 한 번이니 지르자, 못할 게 없다! 살짝 돌아버린 나와 한시적으로 한도가 증액된 신용카드가 있으니 못할 게 없었다.


첫 번째 지름은 결혼반지였다. 직장인이 되고 학생보다 소비의 폭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주얼리에는 그 범위가 미치지 못했다. 웬만한 백화점 명품 매장은 곧잘 들락 나락 거리지만 주얼리 매장은 살짝 어려웠다. 반지를 끼면 회사에서 타자를 치기 어렵다는 혼자만의 논리로 주얼리 매장 윈도우 너머에 가급적 눈을 두지 않았다. 꼈다 하면 삼백, 오백이 훌쩍 넘는 작고 반짝이는 물건들을 가지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반지는 달랐다. 일단은 인생에 한 번인데, 좋은 걸 사자는 마음으로 각종 브랜드 제품을 손가락에 얹어보았다. 골드는 메탈과 달랐다. 조명 아래에서 반사하는 빛깔이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작아도 다이아몬드가 올라가는 순간 반지의 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래서 메릴린 먼로가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친구라고 노래했던 걸까. 우리는 다양한 옵션 중 주변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구매한 브랜드의 반지를 구매하게 되었다. 나는 두 개, 남자 친구는 하나. 크고 작은 반지를 레이어드 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예뻤고 두 개의 반지는 사실상 하나의 세트라고 판단되어 이와 같은 구성으로 사버렸다.

쏘 샤이니...!!!!

다음은 매트리스였다. 매트리스 전문점과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인생의 삼 분의 일을 보내게 되는 침대 찾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잠자리에 크게 예민하지 않아서 적당히 좋은 걸 사자고 합의했는데 특정 브랜드의 특정 매트리스에 눕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기가 시그니엘인가? 아니면 콘래드? 자연스럽게 고급 호텔의 침대를 연상하게 되는 기깔나는 느낌에 바깥임을 잊고 편하게 누워 눈을 감게 되었다. 옆에 누가 있어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탁월한 충격 흡수와 나의 전신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쿠션감이 참으로 좋았다. 이 침대가 우리의 집에 있다면 퀄리티 높은 수면은 물론 사소한 다툼까지 잊게 해주지 않을까.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견적을 받아보았다.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우리가 받은 여러 개의 매트리스 견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치 모닝 사러 갔다가 그랜저 샀다는 옛날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얹다 보니 가격이 상당했다. 오전에 우리 마음에 들었던 매트리스가 100만 원 초반대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몇 배로 가격이 올라가 있었다. 사실 저렴한 매트리스도 나쁘지 않았기에 결정을 내리기 더 어려웠다.


“오빠, 어떡하지?”

“글쎄. 근데 이 브랜드가 진짜 좋긴 좋았어.”

“나도. 이게 침실에 있다면 매일 아침 호텔에서 일어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렇지? 그리고 누가 그러던데 매트리스는 10년을 쓴대. 그럼 1년에 00만 원이고 한 달에 0만 원 정도 하는 거잖아.”


마치 만담이라도 하듯 서로의 말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집도 못 구했으면서 고가의 매트리스를 구매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꿈인가, 싶다.


아무튼 글을 쓰는 지금도 빨리 결혼 과정이 마무리되고 안락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는 날이 기다려진다. 정말 잘 샀어, 정말로.


결혼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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