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시리즈 글을 쓰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있던 일을 다 적자니 지루하고 압축해서 적자니 너무 몸통만 남는다. 공통의 주제라고 해도 집마다 같고 다른 부분이 있어서 어떤 순간을 자르고 살릴지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급한 성격이므로 아주 알맹이 중의 알맹이만 남겨보도록 하겠다.
아무래도 딸 가진 부모 심정이 더 복잡해서 그런 걸까. 한 큐에 큰 며느리 자격을 얻게 된 나와 다르게 남자 친구는 첫 번째 인사 이후 우리 가족과 두 번 더 만남을 가졌다. 마지막 만남에서 남자 친구는 소주 네 병과 맥주 500cc 14잔을 기울이며 아빠한테 공식적으로 ‘0 서방’ 칭호를 얻게 되었다. 격동의 술자리가 지나간 다음 날, 우리 집에서 다 같이 해장국을 먹으며 아침을 함께 했는데 이제야 부모님이 남자 친구를 받아들인 기분이었다.
남은 과정은 상견례였다. 상견례.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장면이다. 아드님을 참 잘 키우셨습니다, 아닙니다, 따님이야말로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재원이지요.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생각만으로 어색해서 손발이 쭈뼛거릴 지경이었지만 상견례를 스킵할 수는 없었다. 부디 무탈하기를 바라며 서울 시내 대표 상견례 식당에 예약을 했다.
우리의 결혼 준비는 상당 부분이 자식 주도적이라 상견례에서 논의할 사항은 별로 없었다. 이미 식장, 예식 날짜, 시간은 다 정해졌으며 신혼여행이나 살 곳도 우리가 알아서 할 예정이었다. 식사는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한식 코스 요리였다. 두 시간 동안 무슨 말을 나눌런지 기대 2, 걱정 2, 지루함 6을 안고 부모님과 식당으로 향했다.
자리까지 정해주는 능숙한 식당.
“아이고,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렇게 얼굴을 뵙네요.”
세상 어색한 인사로 상견례는 시작되었다. 식당은 상견례 명소답게 아주 스무스하고 프로페셔널하게 한식 코스 요리를 내놓았다. 대화는 주로 남자 친구네 아버님이나 우리 엄마가 주도했다. 자식들의 첫인상과 이 험난한 세상에서 두 사람이 만나 같이 살게 되어 다행이고 마음이 놓인다는 덕담 위주로 이야기는 흘러갔다. 중간중간 자식 자랑도 빠지지 않았다. 과하지 않은 수준의 자식 자랑 에피소드를 주고받는 양가 부모님을 보며 느꼈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구나. 우리 자식 자랑은 적당히 맺고 끊되 상대의 자랑에는 경청하고 적당한 리액션을 해주시는 네 분의 사회 및 대화 스킬을 보며 본받기로 했다. 나도 회사에서 저렇게 행동해야지. 다들 처음 겪는 상황일 텐데도 마치 n회차처럼 능숙하게 대화를 듣고 리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로 별 일이 없어서 마음이 놓였고 테이블에 놓인 정성스러운 요리를 신나게 먹었다.
코스의 마지막에 제공되는 디저트가 화룡정점이었다. 어디선가 홀케이크가 들어왔다. 서버 분께서 긴 초를 하나 꽂아주었는데, “오늘부터 1일이라 하나인 가요?”라고 묻는 나에게 “이제 두 사람이 만나 하나 되는 의미입니다.”라고 답을 해주었다. 미쳤다. 이것이 바로 상견례 명가의 짬바인가. 룸 안의 모두가 정말 좋은 뜻이라며 입을 모았고 식당을 추천해준 지인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사진까지 찍어주는 엄청난 코스였다.
두 시간짜리 식사는 조금 늘어져서 세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모두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택시 안에서 엄마는 시댁 어른들이 너를 힘들게 하실 분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동의하는 아빠를 보며 나의 마음도 놓였다. 세 시간 동안 방긋 웃은 보람이 있었다. 비록 엉덩이는 조금 배겼지만 말이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잘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걸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 내 인생을 살아야지, 왜 부모님까지 고려해야 하는 걸까.라고 살짝 삐뚤어진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상견례를 거치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결혼의 과정에서 가장 고생하는 건 나와 남자 친구라고 생각했다. 일정을 맞추고 의견을 조율하고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니까. 허나 우리 못지않게 양가 부모님도 많은 걱정과 신경을 쓰고 계셨다. 우리 둘 외에도 가족의 노력과 도움을 생각하니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우리를 믿고 지지해주는 어른들을 생각해서라도 잘 살아야지. 이처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어쩌면 결혼의 순기능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