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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Mar 30. 2022

16화_ 어쩌면 플라시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예뻐보이고 싶다.

※ 본 글은 시술 및 성형을 권유하거나 옹호하는 글이 아니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담았습니다. 미용 시술은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 문제로 해당 글이 어떠한 자극제가 되어 성급한 시술의 시발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름대로 1년 정도의 기간을 갖고 결혼을 준비했지만 마치 마감일에 닥쳐서야 많은 것들을 해결하는 것처럼 점점 신경쓰고 결정해야 하는 요소들이 증가했다. 결혼 준비와 회사 일은 물론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 많아 일주일은 7일이고 하루는 24시간인데 정신차려보면 밤 12시였고 시간은 은은하게 부족했다. 어쩌면 퇴근 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덜봤더라면 시간이 넉넉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렇게 산다면 인생의 재미가 크게 사라지므로 시청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상황이 이러다보니 예비 신부의 코스 중 하나인 경락이나 피부 마사지는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한 친구들을 보니 경락은 스무 번은 받아야 그 효과가 있다고 하고 관리사분들의 손 힘이 너무 세서 매 회가 괴롭다고 했다. 피부 마사지도 매 주 두어 차례 방문하는게 어려울 것 같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남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외모와 몸매를 세세히 훝어보고 따져보지 않았듯이 남들도 내 결혼식에서 나의 미모 레벨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웨딩 촬영은 어떠한가. 21세기의 선물인 포토샵이 있기에 나의 팔뚝은 얼마든지 가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점점 식이 다가오자 나 또한 평범한 예비 신부로서 자꾸만 외모에 관심이 흘러갔다. 마법의 단어, ‘인생의 한 번인데’ 를 떠올리자 관리 한 번 없이 이 시기를 지나가기 아쉬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간단하게 시술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이 정해지자 예전에 몇 번 좋은 기억이 있던 병원으로 호기롭게 발길을 향했다.


  [00병원]의 000 원장님은 직접 상담을 하고 시술을 하는 강남의 몇 안되는 의사 선생님이다. 강남 대부분의 병원은 상담 실장과 상담을 하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시술을 하는데 이 곳은 상담부터 시술까지 원장 선생님이 일괄적으로 진행해주어서 믿음이 가는 곳이다. 게다가 얼굴을 보고 시술이 필요 없겠다 싶으면 그냥 가라고 하는 곳 이어서 세 가지 정도 시술을 받아야지, 라고 마음 먹어도 한 두군데만 받을 때도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랜만에 찾아갔기 때문일까, 선생님은 단호하게 이 곳과 저 곳 그리고 요기를 보충하자고 진단을 내려주셨고 나는 호기롭게 콜을 외쳤다. 내가 받기로 한 시술은 필러와 리쥬란이었다. 필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리쥬란이었다.



  리쥬란은 폴리뉴클레오타이드(polynucleotide)라는 성장 인자를 얼굴에 직접 주사하여 표피층과 진피층의 근본적인 재생을 유도하는 피부 개선용 시술이다. 잔주름과 피부 탄력 개선에 효과가 있는데  보통 1개월 단위로 세 번을 맞은 이후 3~6개월 단위로 한 번씩 맞아주면 좋다고 한다. 나는 웨딩 촬영 전까지 세 달에 걸쳐서 세 번 맞기로 했는데, 첫 번째 시술 이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 말까?’


  이와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비용도 아니요, 효과도 아닌 고통이었다. 나는 비교적 고통을 잘 참는 성격으로 만 7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입원을 했을 때 굵디 굵은 주사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한 면모가 있는데, 리쥬란 앞에서 나의 강함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시술은 의사가 주사로 한 땀 한 땀 얼굴에 성장 인자를 집어 넣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쉽게 말해서 얼굴 전체에 주사 바늘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마취 크림과 치과용 신경 마취를 해주지만 리쥬란의 고통은 그깟 마취 주사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 전체에 주사바늘이 왕복 운동을 하는데 실제 시술 시간은 13~15분 내외로 짧지만 마치 1.5시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아프다.


  리쥬란 주사를 맞으며 생각했다. ‘나는 독립 운동은 못하겠다.’. 내돈내산 고통에도 이처럼 괴로워하고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은데, 잔혹한 일본인의 극악무도한 고문 앞에서 10분은 커녕 5분은 버틸 수 있을까. 특히 눈가와 볼 쪽에 주사를 놓을 때면 그만 멈춰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허나 이미 결제는 완료되었고 리쥬란 2cc는 개봉되었고 돌이킬 수 없었기에 나는 별 수 없이 간호사 선생님이 쥐어준 봉제 인형을 터질 듯 부여잡고 그 시간을 견뎌내었다. 실로 지옥같은 15분이었다.


  시술이 끝나고 얼굴을 보니 얼굴 전체에 엠보싱처럼 피부가 볼록하게 올라왔다. 내가 인간 두루마리 휴지, 인간 뽀삐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라고 해도, 남자친구라고 해도.


  얼굴이 눌리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선잠을 자고 다음 날이 되었다. 다행히 돌기 자국은 모두 쏙 들어갔다. 자잘한 주사 자국을 제외하면 큰 멍이나 티가 날만한 구석은 없었다. 재생 테이프 몇 개를 붙이고 출근하니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거나 점을 뺐다고 생각했다. 숨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광고할 만한 일도 아니기에 이런 미지근한 주변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고 일어날 때 피부의 수분감이 달랐다. 뭔가 촉촉한 기분. 가습기를 틀어야 할 정도로 건조한 겨울임에도 피부가 당기지 않고 탱글탱글한 느낌. 이것이 리쥬란의 효과인걸까.


  감히 비교하자면 마치 출산같았다. 아이를 낳을 때 너무나 아프지만, 아이로 인해 얻게 되는 사랑과 소중한 감정이 있기에 둘째를 낳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 또한 리쥬란의 고통을 잊지 않았지만 차오르는 수분감에 도취되었다. 그렇게 총 세 차례의 리쥬란 시술을 받게 되었다. 매 회차 아프지 않은 순간이 없었지만 원래 피부가 좋은 사람이었던 것처럼 점점 좋아지는 얼굴 탄력에 모른척 할 순 없었다. 어쩌면 이만큼 아팠으니까 당연히 좋아졌겠지, 라고 생각하는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나 아팠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얼마나 억울한가. 본식까지 두 어번 더 맞으려고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또 맞으러 가겠지. 신나게.


  어쨌든 예뻐보이고 싶은 것, 그것이 신부의 기본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달 예약 날짜나 잡아야겠다.

대기할 때의 두려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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