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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Apr 14. 2022

17화_길을 비켜라 공주 나간다

결혼 준비의 공주 모먼트, 드레스 투어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힘들었지만 몇 가지 즐거운 순간이 있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신혼여행, 축의금 정산이 있었고 모두 입을 모아 드레스 투어를 언급했다.

  

  [드레스 투어] 란, 보통 본식과 웨딩 촬영 때 입을 드레스 샵을 고르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2~3개의 드레스 샵을 다니며 나와 맞는 의상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의미한다. 보통 한 개의 샵에서는 4 벌의 드레스를 입어보게 되고, 1회 차 방문 때는 본식 때 입을 드레스를 정한 다음 2회 차 방문 때에는 웨딩 촬영 때 입는 드레스를 고르게 된다.

  

  특이한 문화 중 하나는 [피팅비]를 지불하는 과정인데, 서울 기준으로 5만 원을 샵에 지불해야 한다. 샵 당 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어쩌면 과도한 샵 투어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생각이 들지만서도 영 탐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본식 드레스 투어 때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 고작 네 벌인데 다 기억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소에 많이 접하던 옷이 아니라 그런지 옷을 벗는 순간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같이 간 사람들이 드레스 특성을 잘 기억해주어야 샵 투어를 마친 후 선택의 기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무튼 유부녀 친구들은 드레스 투어야 말로 제대로 공주 놀이를 할 수 있었다며 나에게 샵 투어는 다다익선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어차피 많이 봐도 기억도 못할 것 같아 두 개의 샵을 예약해서 나와 남자 친구, 엄마와 플래너 이렇게 웨딩 어벤저스와 방문하기로 하였다.



    앞서 말했듯 나와 남자 친구는 양가 모두 지방에 위치해서 결혼의 대부분을 우리 둘이서 준비하고 있었다. 오히려 좋았다. 온전히 두 사람의 선택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딸 가진 엄마로서 자식의 결혼 과정에서 너무 소외되었다는 기분이 들까 걱정되었고 드레스 투어는 적당히 감성적이고 크게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적합한 딸내미 결혼 체험 코스였다. 엄마는 잔뜩 신난 얼굴로 우리의 드레스 투어에 합류했고 그렇게 첫 번째 샵으로 향했다.


  “어머, 신부 어머니시죠? 같이 드레스 보러 오셨나 봐요.”

  “네, 큰 딸 결혼이라 오늘 지방에서 올라왔지 뭐예요. 예쁜 옷 잘 보여주세요.”


  붙임성 좋은 샵의 실장님과 사회성 좋은 엄마가 말을 주거나 받았다. 나는 탈의실에서 머리도 세팅하고 티아라와 귀걸이까지 착용하고 첫 번째 드레스를 입어보았다. 옷을 입는데 무려 두 명이 도와주셨다. 내가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는 동안 앞 뒤에서 부산스럽게 나를 예쁘게 만들어주었다. 아, 이게 공주구나. 내가 옷을 입는데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이것이 공주의 삶이구나. 간접적으로 느껴본 왕족의 삶은 꽤나 달콤했다.

  

  “신부님 모두 준비되셨습니다, 커튼 걷겠습니다.”


  낭창한 드레스 샵의 실장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커튼이 챡, 하고 걷혔다.


  “어머, 우리 딸 너무 예쁘네.”


  옷이 날개인 걸까. 내가 나를 봐도 예뻤다. 결혼 준비를 하며 살을 빼기도 했거니와 장염에 시달려 의도치 않게 몸의 군살이 많이 덜어졌다. 거울을 쳐다보았다. 화려한 비즈가 알알이 박힌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생전 짓지 않던 가련한 표정이 절로 나왔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손가락 끝으로 에지 있게 드레스 자락을 잡아 올려 공주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 엄마, 울어?”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엄마는 살짝 눈물을 보였다. 본식 때는 얼마나 우실런지 걱정이 되면서도 나도 괜스레 울컥해졌다. 허나 여기서 나까지 울 수 없는 법. 서둘러 분위기를 수습했다.


  “엄마, 왜 울어. 울지 마. 그러고 보니 오빠는 왜 안 울어. 어서 울어. 보통 신부가 예뻐서 울면서 손뼉 친다는데 박수도 울음도 없는 게 말이 돼? 어서 울어.”


  뼛속까지 공대생인 남자 친구는 나의 러블리한 자태를 보고 감탄하기보다는 기록에 전념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안되기 때문에 핸드폰에 엉성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서 울어 보라는 나의 요청에도 어색하게 웃으며 열심히 핸드폰에 끄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도 귀여워 보인다니, 이것이 콩깍지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엄마, 오빠, 나 공주 같다 진짜로. 다들 어서 나한테 세금 내. 나 공주니까.”

  “너는 무슨 신부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아무튼 유별나.”


  계속되는 드립에 엄마는 눈물을 멈추고 웃음을 짓기 시작했고 나의 알파고 같은 남자 친구도 미소를 지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드레스도 무사히 입었고 이어서 두 번째 샵에서도 네 벌을 연달아 잘 입어 보았다. 그리고 잠깐의 고민이 있었지만 드레스 샵을 고르고 셋이서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엄마, 오늘 드레스 같이 본다고 고생 많았어.”

  “고생은 무슨. 엄마가 이런 거라도 도와줘야지. 둘이서 결혼 준비한다고 너무 고생 많아. 엄마가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해.”

 

  늘 미안하다는 우리 엄마. 괜히 듣는 딸 속상하게 오늘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했고 나와 오빠는 맛있는 소고기를 대접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는 살짝 센티멘탈했었다.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보니 정말로 결혼이 실감 났다나 뭐라나. 살갑지 못한 못난 딸내미는 이제서야 실감나냐고, 상견례도 다 했으면서 왜 아직도 실감이 안나냐고 멋없게 대답했지만 엄마가 자꾸 나를 어디 보내는 사람처럼 굴어서 속상했다.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사는데 왜 이리 멀리 보내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 걸까.


  그렇게 화려하지만 은은하게 씁쓸한 공주 놀이가 막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남자 친구로부터 세금이 입금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재촉해봐야겠다.


사진을 못찍으니 플래너님이 그려준 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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