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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May 15. 2022

18화_ 그래, 이 결혼의 시작은 몰디브였지.

ENTJ의 신혼여행 예약기

"두 사람은 왜 결혼을 하기로 했어?”

  

  주변에 결혼한다고 하면 흔히들 하는 질문이다. 너무 사랑해서요, 데이트가 끝나고 헤어지기 싫어서요, 등등 멋진 질문이 많지만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부모님한테 거짓말 안 하고 남자랑 해외여행 가고 싶어서요. 신혼여행도 가고 싶고, 같이 돈 모아서 서울 한복판에 집도 사고 싶구요.”


  물론, 우리는 서로 많이 사랑한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기본 전제에 몰디브와 집이라는 동기 부여까지 되면 얼마나 좋은가. 결혼이 구체화되고 아직 코로나는 신나게 확산되고 있었지만 결혼 6개월 전부터 슬슬 신혼여행을 준비했다. 그래, 만약 못 가면 날짜를 미뤄서 나중에라도 가자. 일단 예약을 하자,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몰디브라고 하면 막연하게 뽕따색 해변의 한적한 섬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실상은 조금 더 복잡하다. 살짝 과장해서 200개가 안 되는 숫자의 리조트가 운영 중에 있으며 객실의 크기, 개수, 본섬과의 이동 거리, 규모, 섬의 자연환경, 식사 유형(밀 플랜) 등 다채로운 옵션이 여행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신나는 마음으로 몰디브 여행을 알아보다가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몰디브 대학 리조트 학과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허나 회사 일이라면 일단 미뤄놓고 보는데 비해 신혼여행 준비는 그렇지 않았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신혼여행] 시트를 만들어 포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토록 바랐던 몰디브였기에 안 그래도 정갈하게 정리된 나의 결혼 마스터 엑셀 파일에 [신혼여행] 시트는 갈수록 디테일해졌다.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세상이 좋아졌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방구석에 앉아서 유튜브만 뒤져도 고급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몰디브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엑셀의 한 칸, 한 칸을 채워나갔다.



엑셀을 만들며 너무나도 즐거웠다면, 나는 문제가 있는 걸까.

  

  한동안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카페에서 태블릿으로 몰디브 유튜브 보고 정리하기였다. 특히 ‘아일랜드 트래블러’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얻은 정보에 리조트 검색 및 다채로운 후기를 검색했다. 그리고 우리만의 선별 기준을 만들었다.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희망 사항에 부합하는 곳으로 장소를 찾아나갔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몰디브 희망 리조트 조건]


1. 이동 시간 1시간 이내: 안 그래도 비싼 리조트에서의 투숙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2. 라군 / 수중 모두 중급 이상: 뽕따색 해변과 생물 다양성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음

3. 중국인 투숙 비율 낮은 곳: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 오픈이나 레노베이션 10년 이내: 신축 아파트를 찾는 것과 비슷한 마음

5. 워터 객실 혹은 워터+비치 믹스 가능: 이왕 온 몰디브의 다양한 매력을 느끼기 위해

6. 개인풀 / 해먹 / 살라 갖춰진 곳: 없어도 좋지만 있으면 더 좋은.

7. 공용 풀이 넓은 곳: 인구 밀도가 높으면 부끄럽다. 


 

  세상사 모든 소비가 그러하듯 몰디브 리조트도 비슷했다. 백 달러만 더, 백 달러만 더 얹으면 숙소의 퀄리티가 쑥쑥 올라갔다. 모닝 사러 왔다가 그랜저를 사는 어느 운전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재벌 3세가 아닌 우리 부모님 2세인지라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최고의 ROI 성과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소네바 자니는 나중에 성공하고 다시 가자. 얼추 희망 리조트를 정한 다음 이미 몰디브를 예약했다는 대학교 후배의 조언에 따라 두 개 업체와 연락하며 비교 견적을 진행했다. 연락은 잘 되지 않지만 가격은 조금 더 저렴한 A업체와 빠릿빠릿하지만 가격이 살짝 더 높은 B업체 가운데 남자 친구와 함께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네고를 시전 했고 A업체 가격에 거의 가깝게 견적을 맞춰서 B업체로 예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000 담당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예약금 30만 원을 걸고 내친김에 항공권까지 예약하니 몰디브 준비가 거의 끝났다. 출발 60일 전에 잔여금만 지불하면 되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아직 입국 전, 후 PCR 검사는 남아 있지만 입국 후 7일간의 자가 격리 의무는 사라져서 한결 마음이 편하다. 각종 해외여행 견적이 올랐다는 소식에도 어쩔 수 없이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잘했다, 과거의 나 자신. 즐겨라, 미래의 나 자신. 


  그렇게 결혼, 아니 몰디브까지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다. 괜히 여권을 만져보는 밤이다. 


너에게 닿기 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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