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_ 두껍아 두껍아 헌 집이라도 다오

새 집은 꿈꾸지도 않는다.

by 도링기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다음, 남자 친구네 방문 일정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은은하게 쌓이는 정서적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잠시 쉴 법도 했지만, ENTJ는 일상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법. 나는 신혼집을 알아보자고 제안했다.


집값은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었고 내년 결혼할 시점에 전세 계약을 하면 전세 매물은 부족하고 가격은 또 오르지 않을까,라고 판단했다. 한 푼이라도 저렴할 때 나라도 먼저 입주해서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직접 눈으로 한국 부동산의 현실을 접하면 우리의 근무 의욕이 반강제적으로 상승할 것 같았다.




나는 서울, 그는 인천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터라 신혼집 지역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강서 쪽이라면 고민거리가 줄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강남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어 우리의 고려 사항은 늘어나기만 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만 힘들면 된다며 남자 친구는 나의 직장 근처에서 살자고 제안했다. 본인은 서울 2호선 어딘가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고. 꽤나 스윗한 제안이었으나 그가 2호선을 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인턴 시절에 2호선으로 출, 퇴근을 했던 그 두 달간 나의 성격이 가장 많이 망가졌었지. 극한의 사당-강남 루트를 반복하며 인류애가 급속도로 감소했었는데 그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7호선을 주목하게 되었다. 살짝 나의 직장 쪽으로 치우친 동네로 살펴보았고 후보지를 결정한 다음 직방과 호갱노노, 그리고 몇 군데 부동산에 연락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인이라면 입에 달고 사는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어"와 "그때 코인을 샀어야 했어"를 다시 한번 되뇌면서. 무조건 아파트를 고집하기보다는 투룸 빌라도 같이 고려하며 서울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갭투자라도 할 것을. (출처: 연합뉴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필수 조건은 명백한 의사 표현이다. 부동산에 집의 크기, 지하철과의 거리, 전세 보증금의 범위를 전달했고 평일 혹은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실로 오랜만의 부동산 투어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몇 번의 계약 연장을 했던 곳으로 입사 이후 이사를 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맨 처음 집을 구경하러 갔을 때에는 수압 체크나 벽지 상태 확인 같은 기본적인 체크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반복되는 집 구경은 나를 빠른 눈으로 만들어주었다. 동네 환경, 대중교통의 접근성, 분리수거 방법, 거실의 맞벽 구조, 에어컨 설치 가능 여부 등등 구경하는 집이 늘어날수록 나의 질문과 확인 리스트도 늘어났다.


비싼 만큼 좋은 집도 있었고 이 가격에 이것밖에 안 되는 집도 있었다. 특정 종교를 비하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어떤 동네의 한 빌라는 입주민의 대다수가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대문의 초인종 옆마다 00 교회 스티커가 붙어있는 걸 보면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집은 벽지가 벽에서 탈출해있었다. 자유 의지를 가지고 너덜거리는 벽지를 가리키며 벽지 시공을 다시 해야 될 것 같다는 나의 말에 TV로 가리면 되지 않겠냐는 중개사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었다.


신축 빌라도 몇 개 봤었다. 난생처음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시스템 에어컨이 들어오지 않아 뻥 뚫려있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구멍이 나있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새까만 구멍을 보며 우리의 미래 같다고 여겼다. 지리멸렬한 집 구하기 끝에 우리가 퇴근을 하고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은 구할 수나 있을까. 왜 나는 집을 살 생각을 안 했던 걸까. 왜 나는 저축만 했을까, 주식이나 코인은 무섭다고 외면하기만 했을까. 도대체 왜 집 값은 이렇게 올라버린 걸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통장의 숫자와 집 값을 비교해보니 나의 지난 금융 라이프가 낙제점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왕 이렇게 대출을 받을 바에야 아파트 매매도 고려하게 되었다. 영 끌을 왜 하는지 사무치게 이해되었다. 한 동짜리 아파트를 구경했는데, 서울에 몇 남지 않은 6억 아래 가격이었다. 임장을 가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구매하시겠냐는 부동산의 연락에 좀 더 둘러봐야겠다며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어릴 때 놀이터 모래를 토닥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아무 생각 없이 불렀던 그 노래가 불공정 거래임을 깨달았다. 미안하다, 두껍아. 어린 나는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던 걸까. 게다가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가. 헌 집이든 새 집이든 상관없었다. 우리의 집이 필요했다. 아무튼 한 달 정도 집을 구경하다 제풀에 지친 우리는 일단 부동산 투어를 멈추고 아직까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 사이 전세 대출을 옥죄고 있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한숨을 쉴 뿐이다. 하루빨리 그렇게 해서 집을 구했습니다, 라는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은 멀어 보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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