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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Jan 02. 2022

눈을 떠보니 22년이었다.

횡설수설 맞이하는 새해 소감

  요즘따라 집중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시간을 내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보다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소음과 영상에 정신을 팔고 있기만 한다. 고요와 침묵이 두렵다. 미루어둔 사유와 깊이 있는 고민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 이처럼 정신력의 수준이 감퇴하는 가운데 22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보신각 타종을 챙겨보거나 새해 일출을 보려는 노력은 없어진 지 오래이다. 간신히 떡국을 끓여먹는 게 22년을 대하는 최선의 노력이었을 뿐이다. 물론 그마저 HMR 수준의 준비였음을 수줍게 고백해본다. 


  서른 *살이 되면 멋지고 안정적인 사회인이자 집주인이자 차주인이자 삶의 방향이 확고한 어른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희망찬 과거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1월 1일이 지나 2일이 되었음에도 머리도 감지 않은 자연주의 어른이 되어버렸다. 머리털 관리조차 귀찮은 어른.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무턱대고 슬프거나 아쉽지만은 않다. 기대에 배반당하는 것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서 웬만한 예측 실패나 거절은 나를 쉬이 슬프게 만들 수 없다. 이것이 인생사 새옹지마인 걸까. 생각보다 멋진 어른은 되지 못했어도 슬퍼하지 않는 굳센 정신력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었다. 물론 멋진 어른, 구체적으로 집과 차의 주인인 어른이 되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올해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결혼을 할 예정이다. 식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에 100%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살면서 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으나, 정말 한다고 생각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누가 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니요, 머리에 총을 대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어색하다. 내 의지로 결정한 결혼인데 말이다. 거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몇 개월 뒤 식장으로 손을 잡고 들어갈 걸 상상하니 현실 감각이 들지 않는다. 경험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비현실적이라고 하니 꽤나 공통적인 감상인가 보다. 인생의 다음 단계를 돌입할 거라 생각하니 괜히 발걸음이 망설여진다. 더불어 지금 내가 영위하는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안락해 보인다. 안정적이고 재미있는 나날이 괜스레 아쉽다. 굳이 이 포근함을 포기하고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결혼이라는 문을 여기 망설여진다. 너와 내가 유부월드로 같이 진입하지 않아도 이토록 행복한데, 굳이...?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동시에 떠오른다. 사실 지금 삶의 형태도 완벽에 가깝지는 않다는 것. 아쉬움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는 것. 편안한 혼자의 삶보다 복닥거리는 둘의 삶이 궁금해서 함께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 살면서 완벽이라는 것은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것. 그렇지만 나와 네가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 


  ... 물론 혼자라면 손쉽게 빠져나갈 구멍인데 둘이라서 힘들 수도 있다는 날카롭지만 초를 치는 현실적인 사실도 슬그머니 떠올려본다. 일생일대의 로맨틱한 순간에서도 이토록 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걸 보니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늘어나는 나이와 무관하게, 줄어드는 집중력과 무관하게 22년도 무탈하고 즐겁게 살아가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잘 살아야지, 올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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