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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26. 2021

[본문] 휴.

반년, 그러니까 약 6개월.


열아홉 번이나 그곳에 들락날락거리느라 지나버린 시간.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날, 31일 마저도 스무 번째를 다 채우기 위해 찾아가야 할 그곳.


정신의학과.


그곳에서 건네받는 약 봉투에는 항상 심심한 위로와 배려가 담겨 있다. 진짜 이름을 숨긴 채, OO의원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느 병원으로 위장한 이름이 인쇄된 그 봉투.


어느덧 스무 개 가깝게 쌓인 그 봉투들 에는 내가 그동안 견뎌 온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상한 습관이겠지만, 약 포장지 하나까지도 쉬이 버리질 못하겠더라고.


난생처음 듣는 이름의 약들이 매일 십여 알씩. 그렇게 수백수천 개의 약들이 내 몸에 스며들어 온 것이다. 현대의학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약을 복용하기 전과 후의 차이는 실로 극명했다. 그리고 그만큼 나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지겹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은 내 마음대로 하루치 약을 먹지 않는 소심한 일탈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후회를 다. 불안함, 초조함,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 그리고 이어지는 불면증까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기엔 나는 아직 여전히 허약하다.


감성적인 아픔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고, 슬슬 현실적인 고통도 의외로 뒤따르기 시작한다. 당장에 매달 나가는 병원비와 약값도 만만치는 않은 데다가, 유병력자라는 딱지가 붙어버리는 바람에 보험을 드는 것도 쉽지 않아 졌으며, 그 병력은 곧 공적인 서류에서 나를 대표하는 낙인이 될 예정이다.


정신병자.


하루빨리 치료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오죽하면 의사 앞에서 '더는 치료받고 싶지 않아요'라소리까지 뱉게 되었을까.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렇게 방심하고 포기하려 할 때마다 불쑥 찾아오는 공황발작은 나를 더욱 예민하게, 하지만 그만큼 순응하게 만든다.


뻔하지만, 가끔은 모든 것을 놓고 싶어 진다. 지금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고. 떨쳐내고 싶은 마음을 앞세워 억지로라도 글을 쓰며 나를 달래는 것이다. 깊은 한숨을 한 번.


휴.


언제쯤 나는 이 엉망으로 얽힌, 내 마음을 단단히 묶은,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따스한 봄이 오면? 여름이 와서 모든 게 녹아내리면?


기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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