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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11. 2020

「30살 앞 30날」D-22

9. 22

30살 앞 30날



9. 22, 꿈을 꿀 수 없는



오늘의 이야깃거리는 나의 22번째 삶, 군대 시절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주제겠지만, 군대 시절을 미화하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니 거부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어제에 이어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군 복무를 거치는 동안 심정이 변화하는 과정은 비슷할 것 같다. 입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덮치고, 입대 직후에는 새로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적응시키느라 바쁘다. 군대 생활에 적응이 되어갈 즈음 어느새 마지막 계급을 달고, 곧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설렘과 재사회화를 거쳐야 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꿈을 꿀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제대 날짜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할 때나 가능했다. 그 시절에는 계급에 따른 위계질서도 강했고 병사들의 자유도는 낮았기 때문에.



나는 군대에서 날씨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상 관측병으로 일했다. 전투기를 운용하는 공군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평일 근무는 야간 3교대로, 1-2일 차에는 저녁 5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2명이 교대로 일하고, 3일 차에는 휴식을 가졌다. 주말에도 기상관측은 계속되어야 하니, 하루를 4분할하여 교대 근무를 진행했다. 1명이 휴가를 나가면 휴식 없이 나머지 2명이 교대 근무를 반복했다. 

근무는 날씨 변화를 관측하면서 정기적으로 1시간마다 1번, 특별한 변화가 있을 경우 수시로 그 내용을 보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즉,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설령 날씨가 좋아 쪽잠을 잔다 해도 1시간에 1번은 반드시 깨어나야만 했다. 그래서 항상 사무실 책상의 모니터 옆에는, 1시간 간격으로 고막을 뚫어버릴 기세로 울어대는 커다란 알람 시계가 놓여있었다.



22번째 삶의 3월, 그러니까 입대한 지 1년이 되었을 때 본격적인 시련이 시작되었다. 운이 나쁘게도, 전체 인원이 3명인 부서에 내 위에는 제대를 앞둔 선임 2명뿐이었다. 다시 말해, 그 2명이 제대를 하기 전에 그들을 대신할 신병들이 들어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 2명의 선임이 차례로 말년 휴가를 나가서 제대를 하는 그 날까지, 그들을 대신해줄 신병들이 온다는 소식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결과, 앞서 설명한 3교대 근무를 1교대, 즉 홀로 책임지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버렸다.



그러니까,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주말에는 24시간 내내 홀로 근무를 하는 스케줄. 

다시 이때를 떠올리면서도 어이가 없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그나마 부서의 간부분들이 평일 출근 시간을 조금 늦춰주거나 주말 낮 일부를 대신 책임져주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 7일 내내 야간 근무를 서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몸이 고장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 시간마다 쪽잠을 자며 근근이 버티던 내 몸은, 불과 1주일 만에 파업을 선언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충 관측한 내용을 입력하고, 책상에 엎드려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는데, 알람과 사무실 전화기가 아름다운 화음을 내며 우렁차게 울어대던 그 순간. "너 뭐 하는 거야 이 XX야!" 전화를 받자마자 잠이 확 달아났다.



다행히 특수한 상황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간부님이 잘 설명해주신 덕에, 징계는 면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천둥번개와 폭우가 내려치는 날에는 눈이 뒤집혀가며 일했다. 눈을 멀쩡히 뜨고 있는 것도, 무슨 내용이든 보고를 하고 있는 것도 모두 기적이었다. 

그런 상태로 거의 4-50일 정도 근무를 지속했고, 100일 정도 지나서야 마음 놓고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대한 보상은 3박 4일짜리 포상휴가가 전부였다.



내 22번째 삶을 관통한 그 시기 동안, 꿈을 꿀 여유는 없었다. 매일 밤을 새우며 근무를 하고 나면, 아침을 먹고 저녁에 출근을 하기 전까지 기절하듯 곯아떨어지길 반복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꿈을 굉장히 많이 꾸는 편이지만, 그때만큼은 숙면을 취했던 것 같다.

다른 꿈을 꿀 여유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 새벽에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으면, 이따금씩 다시 사회로 돌아간 후의 삶을 그리곤 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바깥 소식을 접하고, 책이나 교재를 보며 머리가 굳지 않게 노력했다. 날씨를 보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며 괜히 감성에 젖기도 했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여유는 없었다. 당장 오늘의 근무를 무사히 넘기는 것, 다음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1분이라도 더 쉬는 것이 중요했을 뿐.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바쁘고 힘든 일상에 쫓기다 보면 꿈을 꿀 여유가 없어진다.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1분이라도 더 빨리 잠들기를 바랄 뿐, 마음을 달래고 내일을 꿈꾸기 위한 시간을 가질 틈은 점차 없어진다. 그렇게 브레이크 없이 액셀을 밟고 있으면, 핸들을 돌려 방향을 바꾸는 것도, 노란색 경고등에 속도를 줄이는 것도 잊은 채 잠에 취해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고가 날 확률은 높아진다.



나는 우리 모두가 그럴 때면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갖길 바란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하늘을 바라볼 일이 많지 않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수줍게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3초만 멍하니 바라보자.



가끔 하늘을 보는 것이 낯설고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3초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자. 때로는 경외로움을 느끼고, 또는 한숨을 내뱉고, 혹은 왠지 모르게 울컥한다. 그래도, 무엇이든 좋으니 가끔 하늘을 보자.

19년 4월 16일의 일기에서 발췌



그러니, 오늘은 한 번 하늘을 보자.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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