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 do rough Dec 13. 2020

「30살 앞 30날」D-20

11. 20

30살 앞 30날



11. 20, 자유의 상징



오늘은 2020년 12월 12일이다. 숫자가 나란히 질서를 맞추는 모습이 반가운 특별하게 다가오는 날.

20대의 마지막인 2020년, 그리고 20일 후면 새해를 맞이하여 더는 20대가 아니게 되는 기념비적인 순간을 보내는 날이다.



수의 단위가 달라지는 순간은 언제나 특별하게 느껴진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순간도 그러했고,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면서 20대로 접어드는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1999년에서 2000년이 되는, 세기가 바뀌던 그 순간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세기말 감성이 뉴트로 열풍을 타고 재현되는 것을 보면, 그때는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세대말을 맞이하고 있는, 나의 동갑내기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고민이 많은 세대말. 그 감성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20대를 맞이할 때, 가장 기뻤던 사실은 더 이상 미성년자 취급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인이구나.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오후 10시가 넘었다고 해서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나에게 20대는 곧 자유였다.



자취 생활을 시작한 것도 마침 그때였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숨 막힐 만큼 답답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사는 동네, 다니는 학교,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이전과 같은 것이 없었다. 군대를 가는 것이 싫었던 것도 결국은 자유를 박탈당하기 때문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는 삶이라니. 

어떠한 희생이나 투쟁의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자유는 20대 초반의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은, 자유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대학 수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더라도, 내 삶보다는 학점에 더 영향이 클 법한, 허울뿐인 말처럼 다가왔다. 밤새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버린 자유의 대가는 지각으로 깎이는 출석 점수 1점 정도의, 가벼운 책임이었으니까.



하지만 20대가 저물어갈수록, 그 말의 온도와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말보다 냉정하고 무거운 말이라는 것을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 그만큼 내 자유를 포기해야만 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꿈을 좇아 원하는 분야의 일을 계속하려면, 그만큼 다른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나 만족을 포기하면 된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려면, 그만큼 하루하루 먹고 살 걱정을 더 많이 하면 된다. 

물론, 원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다. 자유를 포기해도 책임을 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도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책임을 내가 감수하느냐, 남에게 전가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 개인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 문제에서 어째선지 예전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일복이 넘치는 팔자’라는 주변의 평가처럼, 나는 꽤 오래전부터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역할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할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는 익숙함이 당연함처럼 변하기도 했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익숙한 사람과, 책임을 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



나를 포함해서, 타인에게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내릴 때에는 조심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 그 부담스러운 순간을 회피하려 할 뿐.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것도, 본인의 한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지려하는 것도, 책임을 항상 남에게 전가하는 것도, 타인의 책임을 지나치게 얕잡는 것도, 모두가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 가벼운 책임은 없다.

오히려, 그런 평가를 내리기 이전에 본인의 책임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타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점점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다.



20대가 자유를 상징한다면, 다가오는 30대는 아마도 책임을 상징하게 될 것 같다.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부터, 가족, 연인, 친구, 주변 관계들에 대한 책임까지. 

자유를 논하기에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 보면 점점 책임을 지는 범위를 줄여나가게 되지 않을까. 정말 좋은 친구 3명만 있으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평하는 것처럼



20대의 자유를 느낄 날도 이제는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0살 앞 30날」D-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