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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14. 2020

「30살 앞 30날」D-19

12. 19

30살 앞 30날



12. 19, 금기의 영역에서



19세 미만 금지, 혹은 청소년 이용불가. 

술, 담배가 가장 대표적으로 금지되는 것들이며, 책이나 영화 등의 컨텐츠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PC방이나 노래방도 22시 이후에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는 누적된 사회적인 인식과 관습이 자연스럽게 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아닐까 싶다. 오래전부터 어린아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청소년이 되고, 대학교에 진학해서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에서 항상 난처하게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빠른 년생이라는 제도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했을 때, 법적으로는 청소년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성인인 상태로 1년을 지내야 했다. 빠른 년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그래 왔지만 대학교에서도 여전히 소수였다. 그쯤 되니 놀림받는 것에는 익숙해질 정도였지만, 법적인 제재를 받는 것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연달아 이어지는 각종 술자리에서는 항상 마음이 졸여지다 못해 타버릴 것 같았고, 친구들과 함께 밤새워 놀고 싶어도 밤이 되면 슬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담배를 가까이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그 1년 동안 이런저런 편법과 핑계로 연명하면서 금지와 금기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법적인 금지 대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금기의 굴레를 벗어난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대학생이지만 대학생이 아닌 기분. 대학생으로서 누릴 자유를 또 하나 박탈당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친척 어르신들은 항상 나에게 ‘이제 대학생인데 술도 마시고 그래야지’ 라고 해주셨는데! 그때만큼은 법보다 관습이 가깝기를 바랐다.



지금은 당연히 관습보다 법이 가깝기를 바란다.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그 1년이 지난 이후로는 법으로 인해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일은 없었다. 

되려, 사회적 관습이나 정으로 포장되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나 ‘좋은 게 좋은 거지’ 따위에 피해를 보는 일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집이나 다른 문제들로 계약을 맺을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원치 않게 적당한 사례들이 쌓여갔다.



법은, 간단히 요약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일부 희생하는 대가로 전체적인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교과서에서나 읽을 법한 이야기지만, 살다 보면 저 말들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 오는 법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가해자 때문에 생기는 피해자가 그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와 경제적, 사회적 비용은 어쩌면 그 피해보다 더욱 크고 무겁다. 그런 와중에도 가해자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것이 고의적이든,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법대로 해야 한다거나 신고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는 타인들의 정의로운 조언을 받아들이기에는, 그 뒤에 이어질 인생의 불편함과 두려움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은 그리 가볍지 않다.



잠시 주제를 벗어나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원래 하려던 금기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2020년, 그리고 최근 몇 년은 금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는 시기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강력한 전염병으로 인해, 마스크를 쓰지 않는 행위는 단순히 매너가 없는 수준에서 금기로, 이제는 금지되어야 할 정도의 행위로 변화했다. 또한, 금기로 치부되던 성 정체성, 인종, 문화의 소수자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점차 만들어지고 있다.



적체되어 가는 기존의 사회적 관습은 결국 새로운 관습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윗 세대도 겪어왔고, 우리도 겪고 있고, 우리의 아래 세대도 겪게 될 자연스러운 흐름. 그 속에서 흐름에 휩쓸려 발을 헛디디고 넘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정신만 잘 차리고 있다면, 금기를 거스르는, 그 선을 넘어가는 일을 하더라도 무엇이 두렵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백수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대단한 금기인 것 같지만. 정신만은 바짝 차리자. 



백수의 삶에도 빛들 날 오기를.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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