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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23. 2020

「30살 앞 30날」D-11

20. 11

30살 앞 30날. 업로드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20. 11, TEAM ALONE



11명이 한 팀을 이루어하는 구기 종목, 축구. 여러 가지 종류의 팀 스포츠 중, 내 인생과 가장 많은 시기를 함께 지낸 스포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에는 매일 틈만 나면 운동장에서 공을 차기 바빴고, 군대에서도 축구를 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가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 그 이후에는 직접 하는 대신 보고 즐기는 컨텐츠로 나와 함께했다. 영국이나 독일 리그 경기들을 챙겨보기도 했고, 축구 감독이 되어 팀을 이끄는 풋볼매니저(Football Manager)라는 게임을 오래 플레이하기도 했다. 참고로, 그 게임은 세계 3대 악마의 게임으로 손꼽힌다. 남은 날짜 동안 게임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으려나.



축구를 하면서, 보면서, 그리고 게임으로 즐기면서 느낀 점은, 포지션과 케미스트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월드클래스라고 불리는 선수일지라도, 자기가 잘하는 역할이 있다. 공격수가 골키퍼까지 잘하기에는 둘의 역할도, 요구되는 능력도 너무나 다르다. 자기가 가진 특징과 능력을 잘 알고, 어울리는 포지션을 찾아서, 자기 역할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에게도, 팀 전체에게도 도움이 되는 법이다.

동료와의 호흡, 소위 케미스트리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라는 가사처럼, 서로가 서로의 행동과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케미스트리를 결정하는 요소는 정말 많다. 플레이 스타일은 물론이고, 서로 언어가 통하는 사이인지, 취미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대화가 통하는지, 나이가 비슷한지, 심지어는 어느 지역이나 나라에서 태어났는지까지. 당연하게, 사적인 친분과 경기에서의 퍼포먼스는 강력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사실 오늘 축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꽤 길어진듯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오늘은 진짜 주제는 어릴 적부터 내가 갖고 있던 아주 큰 콤플렉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기억에, 주변에 핸드폰을 쓰는 친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때가 2006년 정도.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 3학년이던 때였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1%의 확률을 뚫고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배정받은 사건으로 인해, 나는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지금까지 어떠한 연락도 닿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고등학교 동창들도 사정은 비슷해서, 정말 친한 친구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연락처도 없는 남이 되었다.

왜냐하면, 내 첫 핸드폰이 생긴 때가 수능을 마친 이후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일말의 불만도 없다. 그때까지는, 핸드폰이 없어서 생기는 불편한 점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동선이 뻔한 아이였다. 매일 아침 학교에 등교해서, 오후 내내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PC방에서 놀다가, 너무 늦지 않게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 삶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일하게 다니던 영어 학원조차 3학년부터는 다니지 않으면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12시간은 족히 넘게 되었다. 그러니 핸드폰이 필요 할리가. 나는 언제나, 심지어 주말에도 학교에 가면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는 NPC(Non-Player Character)였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아싸였다. 발이 넓지도 않고, 친한 친구들과는 어울려도 낯선 아이들과는 급격히 낯을 가리는. 누구와도 친해지는 것이 가능한 인싸 친구들을 보면 마냥 신기했다. 나는 저렇게 할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남고를 나온 탓에, 여자와 말을 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남고생이 되어버렸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목소리가 가늘게 떨릴 정도로. 



그리고 그 상태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콤플렉스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2010년 초반을 기억한다면, 그 시절 10대 20대가 어떤 세대인지 익히 알고 있으리라. 바로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SNS 1세대. 

지금은 SNS가 많이 익숙해지면서 그것을 대하는 방식도 다양해졌지만, 적어도 그 당시 SNS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매일같이 싸이월드 TODAY 숫자를 체크하고, 서로 방명록을 남기며 하루를 기록하고, 팔로워가 몇 명인지가 기준이 되며, 좋아요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이 달라지는, SNS에 울고 웃던 시대. 그 SNS의 밑바탕이 되는, 각자의 핸드폰에 등록된 연락처의 숫자가 사람의 크기를 결정할 정도였으니. 그 숫자가 곧 인망이자 능력이었다.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비단 친구들 뿐은 아니었다. 친척들, 심지어는 부모형제까지도 그랬으니.



그 시대에 나라는 존재는 어느 팀에라도 끼어들기 위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는 후보 중의 후보, 혹은 내 팀을 위해 뛰어줄 선수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어설픈 감독과 같았다. 결국 황새를 쫓던 뱁새 짓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기권 또는 은퇴였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으나,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한참 늦은 시기에 떠밀려 시작했고, 그마저도 요즘은 일을 위한 것이 아닌 이상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이것 또한 팔로워가 높지 않은 만년 후보선수의 구차한 변명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만두면 그만이지. 그러면 그 인간관계에 대한 콤플렉스도 별 것 아니게 되겠지.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인간관계는 알게 모르게 정말 큰 영향을 끼친다. 전공 시험의 족보나 팁을 구할 때에도, 아르바이트나 인턴 기회를 알아보려 해도, 취업을 준비할 때에도. 

심지어 취업을 한 이후에도 그 마수가 뻗치지 않는 영역은 없다. 회사 안이든 밖이든,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성과를 얻을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인다. 역시, 다들 인맥도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그 콤플렉스가 오랫동안 짓누른 내 상처로 인해, 내 머릿속에는 절대 바뀌지 않는 생각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누구도 나의 베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 이 얼마나 찌질한 생각이냐.



베스트 프렌드, 혹은 소울메이트.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참 낯설고 어색한 개념이다. 베프라는 그리 진지할 것 없는 이름하에 엮이는 여러 소집단들의 끈끈함을 마주할 때마다, 그리고 그 경계 밖에 선 나를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상처가 덧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여전히 나는, 내가 베프라고 칭하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나는, 그의 베프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거의 확신한다.



혹자는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인싸가 아니냐는 억측을 하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혼란에 빠진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김없이 나를 연민한다. 아직도 이런 말에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구나.



상처가 아물 수는 없다. 아마 평생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낼 수 있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는 아직 나는 너무 무르고 나약하다. 딱 세 명 정도만 되어도 풋살 팀 정도는 꾸릴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저렇게 꼬여버린 이 실타래 같은 생각의 뭉치를 언젠가는 풀어낼 수 있을까.



일단 지금은, 아니 여전히, 나는 혼자다.


 
*참고 1: <와츠롱>, 재달. (새 앨범 11번 트랙)


알아먹었다면 넌 내 친구 나의 사랑

너만 아는 나의 노랜 바로 너의 자랑

내 친구들은 자기만의 삶을 살아

인상 써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잖아 my friend


*참고 2: <0415>, 백예린. (새 앨범 11번 트랙)


I don’t know if I have to be so good

I don’t know if I have to be like you

I don’t know if I could be your friend too

I don’t know about you you don’t know about me



우연히도 재달과 백예린의 얼마 되지 않은 따끈한 새 앨범의 11번 트랙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비슷한 태도로.



어설프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지껄이는 말은 중요치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이, 즉 친구라는 존재들을 믿으며 그들과의 케미스트리를 지키겠다는 태도.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기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굳건히 서있다.



그러니까, 포지션과 케미스트리는 중요하다.

그래 봐야 혼자뿐인 팀이지만.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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